“날이 꽤 추워졌군.”
“벌써 영하로 떨어졌군요. 차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보르도를 두병이나 비우지 않았나. 아무리 나라도 경감 앞에서 음주운전을 할 만큼 강심장은 못되네.”
“레스토랑에서 대리운전수를 불러주겠다고 했을 텐데요.”
“내가 그러길 바라나?”
가로등 아래서 레스트레이드는 걸음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았다. 마이크로프트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스트레이드는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난감해지곤 했다.
“…아닙니다.”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가볍게 웃는 소리가 났다. 레스트레이드는 차가운 밤공기에도 귀 끝이 뜨끈해지는 걸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오랜만의 데이트였다. 이 비정기적인 만남을 데이트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전화를 걸고 약속을 잡고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만나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거기까지는 평범한 지인 사이에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손등을 감싸 쥐는 그의 부드러운 손.
그것은 명백히 악수가 아니었다.
카운터에 미리 맡겨둔 코트를 넘겨받아서 어깨에 걸쳐주는 그의 배려.
한 번도 그냥 넘겨준 적이 없다.
좁은 이인용 테이블 밑으로 스치는 그의 무릎.
무릎 안쪽을 지긋이 눌러올 때마다 숨이 가빠지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그리고 그의 눈빛.
살짝 가늘게 뜨고 빙그레 미소 짓는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괜스레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다시 그의 손.
차갑게 얼은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어와 깍지를 끼는 따뜻한 손가락.
그래. 지금처럼.
“장갑은 안 가지고 왔나.”
“깜빡 했습니다. 아직 10월이라서.”
“손이 다 얼었군.”
“괜찮습니다.”
“이리 줘보게.”
주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거침없는 손이 레레의 손을 깍지채로 잡아당겼다. 손끝부터 차게 언 손등에 따뜻한 입김이 끼얹어졌다.
“마이크로프트씨?”
놀라서 움찔거리는 레스트레이드의 반응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바닥보다 훨씬 따뜻한 입술이 손등 위에 내려앉았다. 작게 오므린 입술은 온기를 나눠주듯 손등 위를 부비고 도드라진 뼈와 뼈 사이를 살짝살짝 어루만졌다. 작은 벌새의 키스 같은 감촉이 레스트레이드의 마디진 손가락을 쓸어내렸다. 레스트레이드는 그가 온기를 전해주고 있는 손보다도 얼굴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마이크로프트씨!”
마이크로프트의 혀가 손가락 사이의 연약한 살을 핥았을 때, 레스트레이드는 못 참겠다는 듯 손을 거둬들였다. 마이크로프트는 의외로 순순히 손을 놓아주고 싱긋 웃었다.
“조금은 따뜻해졌나?”
전혀 머쓱해하는 기색도 없이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레스트레이드는 그를 나무랄 기운도 빠져버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들킬까봐 고개를 돌리는 것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 정도로 노골적인 구애를 끝끝내 모른 척할 만큼 순진한 나이도 아니다. 레스트레이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갑보다 따뜻하군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답하는 레스트레이드 앞에서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씩 웃었다. 그의 입가에 개구진 표정이 떠올랐다.
“그럼……입술은 춥지 않나?”
레스트레이드가 그 말의 의도를 헤아리기도 전에 입술 위에 보드라운 감촉이 와 닿았다. 순간 흠칫했던 레스트레이드는 이내 긴장을 풀고 그와 나누는 첫 키스를 위해 눈을 감았다.
모처에서 레레가 셜록이 물건 놓는 곳을 잘 알고 있다는 썰이 귀여워서 쓴 글.
파일명은 아무렇게나 지어서 우렁각시 레레....Aㅏ........;
시작은 콘돔이었다.
셜록의 침대 옆 첫 번째 서랍에서 자연 발생하듯 솟아나왔던 콘돔이 똑 떨어진 날, 레스트레이드는 그동안 셜록과 금전적인 쉐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관계는 우연의 산물이었고 비정기적으로 끊어질듯 간간히 이어져 왔기에 레스트레이드는 이 관계가 어떤 것인지 쉽게 이름붙이기 힘들었다. 만일 셜록이 자신의 연인이었다면 데이트 비용은 모두 자신이 부담했을 것이다. 레스트레이드는 그런 면에선 구식남자였고 일방적인 지출에 대해서 타협할 의향이 조금도 없었다. 만일 셜록이 만나서 잠만 자는 섹스파트너였다면 섹스에 드는 비용을 분담했을 것이다. 호텔비, 룸서비스, 레스트레이드가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구들, 그리고 콘돔. 목적을 가진 관계는 금전적으로 동등해야 더 오래갈 수 있었다. 그것은 몇 년 전 그리 깔끔치 못했던 이혼 재산분할 소송으로 얻은 지혜였다.
하지만 셜록과의 관계는 그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연인은 처음부터 논외였고 섹스파트너라고 툭 털어버리기엔 공적으로 지나치게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섹스를 하자고 만났다가 미결 사건에 대한 논의로 밤을 새버리고서 섹스보다도 더한 피로감을 느끼며 돌아간 적도 있고, 사건을 해결한 직후 애송이 틴에이저처럼 싸구려 모텔로 급히 뛰어든 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건에서 파생된 관계였다. 사건이 주, 섹스는 부록. 첫사랑에서 이혼까지 산전수전 다 겪어본 레스트레이드였지만 함께 사건을 해결하면서 기분에 따라 몸도 섞는 관계에서 금전적으로 얼마나 부담해야하는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도 귀찮아서 박스로 쟁여놨을 콘돔이 떨어지고 셜록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 썼군. 오늘은 그만할까.’하고 비에 젖은 장작에서 불똥이 사그라지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을 때, 레스트레이드는 기대에 들떠있던 장전된 주니어와 함께 청천벽력 같은 낭패감과 깊은 후회를 느꼈다. Oh, God! 진작 좀 사다둘 것을!
레스트레이드가 셜록의 집에 드나들면서 셜록의 물건들(특히 소모품)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계기가 되었던 콘돔은 셜록이 사다두었던 것과 같은 상표로 두어개씩 서랍에 넣어두었다. 아무리 레스트레이드라도 셜록에게 대놓고 ‘지난번과 같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콘돔 재고 현황을 체크하고 싶네. 일단 이건 오늘 쓸 것과 여분, 그리고 비축분일세.’라면서 콘돔 덕용 포장을 안겨줄 뻔뻔함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셜록이 눈치 채지 못하게 몰래 두어개씩 채워놓고 사용하면 다시 채워놓았다. 셜록이 추리가 아닌 일상에는 무심한 성격이라서 다행이었다.
다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 머리맡의 티슈였다. 마지막 한 장만 간당간당하게 남은 티슈상자를 발견한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이 몸에 묻은 액체를 닦아내려다가 티슈가 떨어진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다 썼군. 오늘은 이걸로 끝내지.’하는 것을 떠올리고서 불안에 떨었다. 다행히 그날은 셜록이 욕실로 직행해서 티슈를 쓸 일이 없었지만 레스트레이드는 당장 마트로 달려가서 같은 상표 같은 향기의 티슈를 사서 바꿔치기했다. 물론 완벽을 기하기 위해 처음 몇 장을 한 움큼 뽑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는 온갖 물건이 다 신경 쓰였다. 셜록이 뉴스를 보려다가 티비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자 ‘배터리가 다 떨어졌군. 오늘은 레스트레이드와 자지 말까.’ 혹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려다 마요네즈 튜브가 텅 빈 것을 보고 ‘샌드위치를 못 먹겠군. 레스트레이드와 자지 말아야지.’ 혹은 구두약이 다 떨어졌을 때 ‘더 이상 내 구두에서 광이 나지 않아. 레스트레이드와 자지 말아야겠어.’하는 상상이 떠오를 때마다 셜록의 집에는 새 물건이 늘어났고 생활이 점점 윤택해졌다.
스스로도 나잇값도 못한다며 혀를 차긴 했지만 셜록이 모르도록 꾸며두는 것은 은근히 재미있었다. 새로 뜯은 비누는 적당히 문질러서 로고를 지워두었고 새 치약은 가운데 배를 꾹 눌러서 짜냈다. 설탕 봉지는 찬장 뒤에 숨겨두고 병에는 반만 채워두었다. 셜록이 자주 쓰는 영역인 책상 위가 가장 까다로운 스폿이었다. 그러나 레스트레이드는 현장 감식에 익숙한 런던의 민완 경감이었다. 테이블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다 쓴 펜이 놓여있던 자리 그대로 바꿔치기하고 인쇄용지가 부족하다는 경고음을 울리기 전에 부지런히 종이를 보태두었다. 레스트레이드의 치밀한 현장조작은 한 번도 의심받은 적이 없었고 셜록은 책상작업이 묘하게 쾌적해진 것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셜록의 거처가 자신의 색깔로 물들어가는 것도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그의 집에서 아침을 맞이했을 때 주방에서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의 향기가 흘러나온다든가, 셜록의 머리칼에서 자신의 것과 똑같은 샴푸 냄새가 난다든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즐겨 마시는 맥주가 차갑게 식은 채로 기다리고 있으면 소소한 기쁨이 느껴졌다. (물론 가끔씩 인체의 일부분이 그 옆자리에 놓여있을 때도 있었지만) 평소에 제대로 챙겨먹지 않는 셜록이 좀 말랐다 싶을 땐 쉽게 꺼내먹을 수 있는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두었고 다음에 왔을 때 그게 없어져있거나 줄어있으면 괜스레 뿌듯했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에 반응하는 셜록을 보는 것 또한 즐거웠다. 야드의 구정물 같은 커피와 비슷한 맛이 나던 자기 집 커피에서 블루마운틴의 우아한 초콜릿맛이 느껴지자 셜록은 눈을 깜빡이며 머그컵 안의 검은 액체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레스트레이드, 이 커피 자네가 끓였나?”
“응, 별론가?”
“…아니, 나쁘지 않군.”
살짝 입맛을 다시면서 천천히 커피를 맛보는 셜록을 보고 레스트레이드는 속으로 몰래 웃었다. 그 후로 셜록은 집에서 차보다 커피를 더 자주 마시게 되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레스트레이드는 셜록보다 셜록의 물건들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귀중한 사건 파일을 보관하는 곳부터 가게에서 받아온 영수증을 쑤셔 박는 서랍 위치, 즐겨 쓰는 머그컵을 넣는 곳이 몇 번째 찬장인지, 아무렇게나 늘어놓는 것 같은 실험도구들의 정리 체계까지도. 가끔 레스트레이드가 셜록의 집에 들렀을 때, 셜록의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으면 슬며시 제 자리에 정리해주곤 했다. 레스트레이드가 다녀갈 때마다 셜록의 작은 플랫은 점점 깨끗해지고 정돈되었다. 그렇게 되자 아무리 일상에 무심한 셜록이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건 인지한 모양이었다.
“요즘 장보러 가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어.”
아무 맥락도 없이 불쑥 튀어나온 말에 레스트레이드는 찔끔 놀랐다. 들켰나? 하지만 셜록의 얼굴을 훔쳐봐도 나른한 표정만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잘된 일이 아닌가. 장보기 같은 귀찮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면서.”
“난 청소한 적이 없는데 집안도 깨끗해지고.”
“자네가 집에 별로 안 있다 보니 그런 거겠지.”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해주자 셜록은 물끄러미 레스트레이드를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자넨 요즘 내 집에 자주 오는군. 자넨 집이 없나?”
톡 쏘는 셜록의 말을 대충 둘러대면서 레스트레이드는 휴우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레스트레이드의 비밀스러운 살림 원조와 은폐공작이 종말을 고한 것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이었다. 모처럼의 휴일에 늦게 일어나서 느긋하게 화장실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레스트레이드는 화장실 휴지가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휴지뿐만이 아니었다. 치약이 떨어져서 이를 닦을 수 없었고 샴푸가 떨어져서 발톱만큼 남은 비누로 머리를 감아야했다. 설탕통이 텅 비어서 커피에 넣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즐겨 마시는 블루마운틴도 찌꺼기만 바닥에 조금 남아서 빈곤의 향기를 솔솔 풍기고 있었다. 심지어 현관의 형광등까지 나가서 깜빡거렸다. 그동안 셜록의 살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자기 집의 모든 소모품이 바닥난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레스트레이드의 폭주는 식비와 기름 값을 제외한 평소 생활비의 두 배에 달하는 카드 청구서가 냉엄하게 증명해주었다. 몇 달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황폐해진 자기 집을 둘러보며 레스트레이드는 넋 나간 부랑자처럼 망연히 서있었다.
시작은 분명히 작은 콘돔 한 곽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의 세간에 자신의 월급을 모두 쏟아 붓고 있었다. 심지어 셜록 본인에게 들키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가며!
“하하, 이게 무슨 짓이람….”
먼지가 얇게 깔린 거실 한가운데에 서서 마른 웃음을 터뜨린 레스트레이드는 다용도실에서 진공청소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집안 대청소를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레스트레이드가 셜록의 살림을 은밀히 체크하고 보태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물건이 제 자리에 놓여있지 않아도 정리하는 것을 삼갔다. 치약이 떨어지고 휴지가 떨어져도 꾹 참고 채워놓지 않았다. 셜록은 쾌적하던 생활이 전처럼 돌아가자 한동안 짜증을 냈지만 곧 잊어버렸다.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의 커피가 다시 구정물 맛으로 돌아간 것이 가장 아쉬웠으나 자신도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셜록의 삶과 레스트레이드의 삶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딱 하나 달라진 것을 제외하고.
“응? 이게 뭔가?”
“콘돔일세. 언제나 자네에게 신세지기 미안해서.”
레스트레이드가 내미는 콘돔곽은 셜록이 사다두었던 것과 다른 상표였다. 셜록은 낯선 종이곽을 들여다보더니 침대 서랍에 휙 던져 넣으며 말했다.
“굳이 안 사와도 되네. 전에 잔뜩 사다놔서 아직도 많아.”
그러자 레스트레이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 내기해도 좋아, 셜록. 내가 장담하건데 금방 떨어질걸.”
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레스트레이드는 그런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경감님? 찾는다고 찾아봤는데 셜록이 두고 간 파일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방이 하도 엉망이라서요. 지금 꼭 필요한 물건인가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존의 난처한 목소리를 듣고 레스트레이드는 자상하게 말해주었다.
“지난 사건 파일이라면 아마 시계가 놓인 선반 바로 밑 칸 바닥에 놓여있을 걸세.”
1분쯤 지나서 다시 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어요! 찾았어요, 경감님! 지금 곧 갖다드릴게요.”
“고맙네, 존. 그럼 부탁하겠네.”
“…그런데 셜록이 파일을 여기 두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레스트레이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셜록도 작은 1인용 플랫에서 2인용 플랫으로 이사 가서 동거인을 들였다고 해도 습관이 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존이 셜록의 집에 들어온 이후부터 전처럼 자주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너무도 셜록답게 어질러진 거실을 보며 레스트레이드는 애써 웃음을 참곤 했다.
“그건 말일세, 존.”
셜록과 함께 살겠다고 나선 이 무모한 남자는 아직 셜록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리고 셜록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텀블러 돌다가 주운 짤인데
루퍼트 어린시절이라는 얘기가 있다.
확실치는 않은데 저 입술이랑 눈이..아니 코도 딱 루퍼트라서 그냥 믿기로 했다ㅎㅎ
아이고 미소년ㅠㅠㅠ
잘생겼다 :Q
윗짤은 판에서 주워온 한줌의 먼지.
아랫짤도 텀블러에서 발견했는데 아마 한줌의 먼지인듯.
이것도 봐야하는데 자막 없이 보려면 소설을 먼저 읽어야겠구나.
미모가 참으로 빛나는구나 *'ㅅ'*
와일드펠의 소유주
1편을 탐색기로 10분 단위로 훑었는데 루퍼트 없어ㅠㅠ
토비 스티븐스가 근사하게 나오는구나.
보신분의 감상으로는 마초 쩌는 남편역이라는데 그런 역에 왜 쓸데없이 귀엽지? 저 머리좀 봐ㅠㅠ
이건 뭔지 모르겠네 :Q
루퍼트는 정말로 E.M 포스터의 뮤즈인가?
죽은 다음에 영화가 나왔으니 뮤즈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렇게 족족 E.M. 포스터 영화에만 골라 출연하는 이유가 뭐냐.
그리고 이 영화 호화 캐스팅 쩌네요ㄷㄷㄷ
루퍼트 필모그래피는 퀴어영화가 꽤 되는구나.
그냥 사진도 펑크한 느낌이 많고.
루퍼트 수염 기른거 멋있다!!!
포사이트 사가
루퍼트가 중년이 되었다는 걸 느낀 드라마.
여기서 데미안 루이스의 형이었나 동생이었나.
데미안이 연기한 소암스와 루퍼트가 연기한 졸리안이 한 여자를 두고 얽히는 내용이었는데
짤은 검색해보면 데미안이나 요안 그리피스밖에 안나올 뿐이고ㅠㅠ
소암스가 너무 매력적인 악역이라 졸리안이 좀 묻혔지만 기억에 남는 훈훈한 배역이었다.
아들 농사를 참 잘 지었지...
생각해보면 셜록말고 유일하게 본 루퍼트 드라마로군?
루퍼트가 존나 때려죽이고 싶었던;;; ATA 1시즌 1화의 나쁜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놀랐을 뿐이고;;; 확인 결과 아니었다 2화에 나왔던 부동산업자다.
킬리 언니랑 잘 어울리긔ㅎㅎ
그리고 킬리 언니의 남편인 매튜 맥페이든과 미스터 후아유에서 형제로 나왔다.
그 사진은 차마 올릴 수 없다......
드디어 셜록으로 들어왔다!
아아 레레ㅠㅠ 너무 좋으뮤ㅠㅠ
루퍼트에게서 이렇게 금욕적이고 삶에 지친 느낌이 날줄 누가 알았겠어.
양언니들의 텀블러에서 발견한 뿜짤ㅋㅋㅋ
얼굴 보고 차별하기는 양언니들이 더하구나... 나는 차마 이렇게 기호까지 써서 표현할 순 없던데...;;
영화판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리틀 도릿과 해피 고 럭키로 얼굴을 익혀둬서 좀 친근하기도 하고..
그래도 레레가 더 훈남이란건 달라지지 않지만ㅋㅋ
레레 시름시름.......
suddenly sexyㅋㅋㅋ
얼굴에 세월의 먼지가 쌓여가기 시작했을 때의 그는 대성하지 못한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묻어있었다.
본인도 방황한 것 같고 필모도 여러가지로 모색해봤지만 크게 뜬 작품이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나이가 완연히 느껴지는 요즘 사진을 보면 꽤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다.
이제야 몸에 맞고 편안한 옷을 입은 느낌.
레스트레이드 역으로 더 많이 알려져서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네.
머리만 대면 잘 자는 내가 1시간을 뒤척거리다가 일어나서 할일없어 빌빌대다 쓴 글.
셜존은 고즈넉할때 잘 나오는 경향이 있다. 동거물이라서 그런가ㅎㅎ
벨소리가 울린다.
내버려두었다.
끈질기게 울어댄 핸드폰 벨소리는 정확히 13번의 울음 끝에 침묵했다.
잠시 후 문자 수신을 알리는 전자음이 따라붙었다.
작은 셀폰으로 알파벳을 치는 걸 싫어하는 주제에 꽤 애가 탄 모양이다.
굳이 액정을 켜고 보지 않아도 문자 내용은 알만했다.
셜록은 커피 테이블 위의 핸드폰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계속 누워있었다.
다리를 다 수납하지 못하는 소파는 불편했다.
창밖에서 정오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쿵쿵.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와 소리사이의 간극이 먼 이유는 그가 바쁘게 두 계단씩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탕탕탕.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칼칼한 외침이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셜록! 셜록, 안에 있나? 날세.”
셜록은 대답하지 않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빛바랜 천장 회칠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있었다.
“셜록.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있네.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도 있어.”
이 자리에 자주 누워있었지만 저런 균열을 발견한 건 처음이다.
물이라도 새는 걸까.
불가능하다.
이 천장 위쪽엔 배관시설이 없지 않은가.
“…………알았네.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주게. 기다리겠네.”
내려가는 발소리의 간극은 짧았다.
한 계단씩 내려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셜록은 눈을 깜빡였다.
가까스로 보였던 천장의 균열이 점점 흐릿해졌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셜록? 파이를 구웠는데 먹겠니?”
똑똑 노크하는 소리, 조심스러운 소프라노.
밀가루와 버터와 설탕이 가열된 달콤한 냄새가 텅 빈 위장을 자극했다.
그러나 셜록은 공복감을 관리하는데 익숙했다.
“크럼블을 올린 복숭아 파이란다. 저번에 맛있다며 세 조각이나 먹지 않았니.”
아니요, 크럼블을 무릎 위에 부슬부슬 흘려가며 세 조각이나 해치운 사람은 내가 아니었어요.
그 파이를 먹고 난 후에 그의 손가락과 입술에선 한참동안 캐러멜과 복숭아향이 났었죠.
“몇 조각 남겨둘 테니 생각나면 얘기하려무나.”
노래하듯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파이 향내와 함께 천천히 멀어졌다.
그녀가 남긴 공명과 향기가 사라지자 어둑어둑한 방안엔 완벽한 침묵이 찾아왔다.
셜록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건조한 안구 위로 눅눅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늦게 221B로 돌아온 존은 어두운 방안에 불을 켜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컴컴한 거실에 셜록이 우두커니 서있었던 것이다. 그의 복장은 존이 급한 호출을 받고 달려 나가기 직전에 봤던, 코트와 머플러까지 두른 차림 그대로였다.
“…셜록? 거기서 뭐하고 있어? 방금 들어온 거야?”
대답이 없었다. 셜록은 거실 한 가운데에 뻣뻣이 서서 무표정하게 고개를 존에게 향하고 있었다. 존은 그에게 가보기 전에 먼저 두 팔에 안고 있는 식료품과 포장음식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놓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상태 역시 존이 나가기 전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안 치운 접시 위에 말라붙은 피클 찌꺼기의 건조 상태가 아침보다 더 진행되었다는 것 정도일까. 존은 한숨을 내쉬며 일단 식료품 봉투를 식탁에 내려놓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접시들을 거둬서 개수대에 넣었다.
“아깐 정말 미안했어, 셜록. 오늘 비번이라고 분명히 말해뒀는데 응급 환자가 들어와서. 그 환자는 결국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어.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았는데 나까지 수술실에……셔, 셜록?!”
갑자기 어깨와 등에 묵직하게 실리는 무게를 느끼고 존은 당황했다. 소리도 없이 다가온 셜록이 존의 두 어깨에 두 팔을 얹고 기대온 것이다. 두 사람의 키 차이 덕분에 존은 셜록의 검은 코트 안에 푹 파묻히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셜록.”
그저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는 셜록의 무게는 존이 짜부라져 버릴 만큼 무겁지 않았다. 그가 적절히 체중을 분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등 뒤에서 흘러들어오는 셜록의 체취에선 런던 거리의 매연 냄새가 섞여있지 않았다. 등에 맞닿은 셜록의 코트도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건 밖에서 오래 걸었던 존의 체온이었다. 셜록의 뾰족한 턱이 존의 차가워진 머리칼을 헤치고 정수리를 내리눌렀다. 존은 셜록처럼 천재적인 탐정이 아니었지만 연인의 포옹이 아닌 아이처럼 엉겨 붙은 셜록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추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늘 같이 피크닉 못가서 미안해, 셜록.”
어깨에 걸쳐진 두 팔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해주자 등에 밀착된 셜록의 무게가 살짝 흔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균형을 잡은 셜록은 말없이 존을 끌어안고 오래오래 서있었다. 차가워진 존의 체온이 셜록과 비슷한 온도로 전도되었을 즈음, 머리 위에서 가슬가슬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쿵파오 치킨인가?”
셜록의 긴 팔이 뻗어나가서 식탁 위에 놓아둔 음식 봉투를 뒤적였다. 미안한 마음에 몇 블럭 더 걸어가서 셜록이 좋아하는 중국음식점에서 사온 메뉴들이었다. 존은 셜록을 등에 업은 채로 봉투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종이곽을 하나씩 식탁 위에 꺼내놓았다.
“응, 그리고 진저 포크와 누들. 포춘 쿠키를 잔뜩 얻어왔으니 나중에 안에 무슨 내용이 들었는지 맞추기 게임을 하자고.”
그러자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웃는 기척이 전해졌다.
“오, 존. 자넨 날 이기지 못해.”
하루 종일 입을 열지 않은 듯 다소 쉬어있는 목소리였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건방진 말투였다. 그러면서도 배가 고픈 듯 어깨너머로 음식 봉투를 부스럭거리고 있는 셜록의 팔을 보며 존의 얼굴에도 미소가 돌았다.
뭉개진 소리에 눈이 떠졌다. 눈앞은 어둡고 군데군데 붉게 명멸했다. 흐릿한 시야 한가운데에 역시 흐릿한 덩어리가 있었다. 셜록은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눈꺼풀에 고여 있었던 액체가 눈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눈이 아프고 귀가 지잉 시렸다.
“…셜록!!!”
먹먹하게 틀어 막힌 귓속으로 자신의 이름이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낯익은 목소리다. 그래야만 했다. 귀가 뻥 뚫리자 뒤따라 눈도 맑아졌다. 잔뜩 찡그렸던 눈을 천천히 뜨자 역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젖고 긁히고 피 흘리고 놀란 얼굴. 그 동그란 얼굴이 걱정을 담뿍 담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셜록은 둔한 입술을 움직여서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턱을 움직인 순간 목구멍에 찰랑찰랑 차있던 물이 기침과 함께 울컥 뿜어져 나왔다.
“셜록! 괜찮아?”
기도에 들어간 물을 다 토해내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기침이 수반되었다. 겨우 숨 쉬기가 자유로워진 셜록은 안 아픈 데가 없는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았다. 그가 앉아있는 곳은 깨진 타일과 무너진 철근 콘크리트의 잔해로 뒤덮인 물웅덩이의 가장자리였다. 그때서야 조금씩 끊어졌던 기억이 이어졌다.
브루스 파팅턴 설계도, 모리아티의 게임, 수영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함정, 폭탄 조끼를 걸친 존, 가차 없이 쏟아지던 붉은 레이저 스팟, 그리고 한 발의 총성.
그 뒤로 기억이 없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엄청난 굉음과 자신의 허리를 잡아채는 재빠른 두 팔 뿐. 아마도 그 팔은 지금 눈앞에서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남자의 것이리라. 셜록은 까슬까슬 가라앉은 목소리로 비로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존….”
“셜록! 괜찮아? 숨을 쉬지 않길래 죽은 줄만 알았어!”
“난 괜찮아. 자네는? 다친 덴 없나?”
“없어! 아니, 여기저기 까지고 멍들긴 했지만 별건 아니야. 그보다 우린 살았어. 그 엄청난 폭발에서 살아남았다고!”
존은 흠뻑 젖은 햄스터 꼴을 해가지고 엄청나게 흥분해 있었다. 모리아티에게 납치되어서 폭탄 조끼를 걸치고 셜록을 기다려야 했던 존이다. 짧은 순간동안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것도 모자라서 눈앞에서 폭탄이 폭발했는데도 무사히 살아남았으니 흥분한 것도 당연하다. 최근에야 인정하게 되었지만 폭력과 스릴을 좋아하는 그로서는 끓어오르는 고양감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존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작은 손으로 셜록의 팔다리가 무사한지 더듬어 살폈다. 아프고 쑤시는 몸에 존의 바지런한 손길이 느껴지자 셜록도 그제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래. 우린 살아있어.”
손을 뻗어서 존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웃음선이 그려진 동그란 얼굴. 언제나 꾸밈없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Brilliant!를 외치던 그의 얼굴엔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있었다. 젖은 이마 위에서 붉은 피를 배어나오는 찢어진 상처로 손을 올리자 존은 아팠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픈 건 좋은 거다.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존의 몸에서 묵직한 폭탄 조끼를 벗겨내서 멀리 던져버렸을 때, 셜록의 손가락은 감각이 없었다. 괴한에게 납치되었을 때나 목을 졸렸을 때조차 감각을 잃지 않았던 손끝은 차디차게 얼어붙어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당연히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존재. 추운 날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온몸을 감싸 안아주는 따뜻한 공기 같은 존재를 덧없이 잃어버릴 뻔했다는 공포감이 셜록의 손끝을 모질게 깨물었었다.
내가 널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폭탄 조끼를 제때 벗겨내지 못했다면,
붉은 레이저가 겨냥한 너의 가슴에 무자비한 총탄이 날아와 박혔다면,
내가 이 폐허에서 눈을 떴을 때 무참하게 찢겨나간 너의 시체가 곁을 나뒹굴고 있었다면….
셜록은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한 손가락을 존의 얼굴에 갖다 댔다. 그리고 젖은 존의 얼굴에서 희미한 생명의 온기를 찾으려 더듬거렸다. 좀 더 만져보고 확인하고 싶어서, 좀 더 따스함을 느껴보고 싶어서 몸을 들이대고 어깨를 붙였다. 존은 셜록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조용히 몸을 기대주는 존의 얼굴을 감싸쥐고서 셜록은 자신의 뺨을 존의 뺨에 비볐다. 물과 피로 젖은 말랑한 피부. 뺨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이 안타까워서 셜록은 자신도 모르게 존의 입술에 입술을 갖다 댔다. 젖은 입술은 젖은 뺨보다 따뜻했다.
그것은 키스라고도 말할 수 없는 미약한 접촉이었다. 온기를 찾아서 얼굴을 부비던 입술과 입술끼리의 짧은 마주침. 맞닿은 입술은 입술 위에 보드라운 감촉을 남기고 떨어졌다. 셜록은 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존도 셜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 놀라움은 담겨있지 않았다. 셜록의 투명한 물빛 눈동자를 쳐다보던 존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존이 자신의 입술을 바라보는 걸 보고 셜록은 이번에는 그가 자신에게 입 맞추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살짝 벌어진 존의 입술이 다가와 셜록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입술 안쪽에서 따뜻한 숨결과 촉촉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그 느낌이 너무나도 반가워서 셜록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벌렸다. 서툰 움직임으로 서로의 온기를 찾던 두 개의 혀끝이 입안에서 바삐 뒤엉켰다. 셜록은 존의 입술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 존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존도 셜록의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밀어붙였다. 입술과 혀, 그리고 손끝에서 번져나가는 열기가 눈물이 날만큼 좋았다.
그가 살아있고 자신이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이나 소중할 줄이야.
숨이 막혀서 입술을 뗀 존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셜록, 자네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러나 셜록은 웃지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살아줘서 고맙네, 존.”
그 말에 존은 다시 웃었다.
흐뭇하게 치켜 올라간 입술에 셜록은 세 번째 키스를 했다.
존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셜록의 손가락은 존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라스트 에너미스몰 아일랜드 의 키스씬을 보고 키스씬이 쓰고 싶어서 시작한 글인데 키스는 얼마 없고....;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존은 베이커가 221B의 낯선 침대인데도 불구하고 꿀 같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따뜻한 잠의 샘에 두 발을 담그고 허리까지 넣고 목 끝까지 차오른 물속에 막 머리를 담그려는 찰나, 띠링! 하는 전자음이 존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았다. 서서히 가라앉던 몸이 멈칫하고 흐려지던 정신이 스윽 맑아졌다. 안 돼. 난 자고 싶다고. 그러나 무정하게도 다시 띠링! 하고 존의 의식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는 소리가 울렸다. 달콤한 잠속에 뛰어들기 직전이었던 존은 잔뜩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옆에 둔 핸드폰에서 푸른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셜록이었다.
‘자요?’
메시지 수신 시각은 2:45am.
이 몰상식한 동거인을 어쩌면 좋을까.
존은 두 번째 메시지를 확인했다.
‘거실로 내려와요. 안 잔다면.’
아니, 나는 잘 거야. 이렇게 편히 잠든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고.
존은 핸드폰 액정을 바닥으로 뒤집어놓고 다시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때 악마 같은 세 번째 전자음이 띠링! 하고 울렸다.
‘안자는 거 알아요. 내려와요.’
한참 액정을 노려보던 존은 가벼운 욕설을 중얼거리며 덮고 있던 시트를 열어젖혔다.
거실로 내려 가보니 셜록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하늘색 가운에 가벼운 실내복 차림의 셜록은 검은 코트차림보다 더 어려보이고 가늘어보였다. 아직 반쯤 감겨있는 눈을 슥슥 비빈 존은 어정어정 걸어가서 셜록의 앞에 섰다. 잠이 매달려있는 존의 얼굴을 보고 셜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깨웠어요?”
“알면서 왜 물어.”
“아직 짐도 제대로 안 옮긴 낯선 집에서 잘도 자는군요.”
“말했잖아.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군에 있다 보면 아무데서나 잘 자게 돼.”
모처럼의 단잠을 방해받은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듯 존의 말투는 낮보다 무뚝뚝했다. 그러나 셜록은 사과대신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부럽군요.”
존은 거의 선명해진 눈을 깜빡이며 셜록을 내려다보았다. 추리할 땐 방해된다고 밥도 제대로 안 먹는 셜록이다. 오늘 택시 운전수 사건을 해결하고 존과 함께 중국음식을 먹긴 했지만 꼬챙이처럼 꼬치꼬치 마른 손목과 목덜미를 보면 그가 평소에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는 건 천재 탐정이 아니라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불규칙한 식사에 따라붙는 단짝은 불규칙적인 수면. 역시 그건가? 존은 조금 풀어진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혹시 불면증이야?”
하지만 셜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불면증은 잠을 자고 싶어도 자지 못하는 병이니까 나에겐 해당되지 않아요. 내 증세는 잠을 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수면장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정신이 맑고 얼마든지 더 사고할 수 있는데 잠을 자는 건 시간낭비죠.”
“아무튼 잠을 못 잔다는 거네.”
못 자는 게 아니라 안 자는 거라고 정정하려던 셜록은 물끄러미 바라보는 존의 눈빛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드레날린 때문이에요. 사건을 해결한 날은 넘치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좀처럼 수면을 취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오늘은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기도 했지. 정신적인 충격도 무시하지 못할 거야.”
“왜 다들 내가 충격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쓸데없이 어깨에 담요나 덮어주고 괜찮냐고 묻기도 하고. 내가 괜찮다는 건 보면 모르겠어요?”
하지만 넌 지금 혼자 잠들지 못하고 자는 나를 깨우면서까지 곁에 불렀잖아.
그 말을 가까스로 도로 삼킨 존은 셜록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스프링 소리가 끼익하고 났지만 앉는 감촉은 제법 안락했다. 존이 옆에 와 앉자 셜록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존을 바라보았다.
놀라긴. 자던 사람을 일부러 깨워서 불러들였으면서 이 정도도 기대하지 않았던 거야?
존은 소파 팔걸이에 걸려있던 무릎 담요를 펼쳐서 셜록과 자신의 무릎에 덮고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댔다. 셜록은 여전히 꼿꼿이 등을 세운 채 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은 세 봤어?”
존의 뻔하디뻔한 질문에 셜록은 대번에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그래야하죠? 그리고 단순한 유아수준의 반복계산으로는 내 두뇌활동을 둔화시킬 수 없어요.”
“따뜻한 우유나 핫초콜릿은?”
“우유는 다 떨어졌고 단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건 왜 묻는 거죠? 나는 자고 싶지 않다니까요.”
미간에 살짝 짜증을 새기며 되묻는 셜록을 바라보며 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봐, 잠이 안 온다고 날 부른 건 너라고.
네가 뭣 때문에 자던 날 깨웠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존은 옆에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셜록에게 어린아이 타이르듯이 말했다.
“내가 자고 싶어서 그래. 네가 자야 나도 방해받지 않고 푹 잘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평소에 예민해진 신경을 가라앉히는 방법 같은 건 없어?”
“코카…….”
“약물 말고!”
존이 그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뻗어서 셜록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리자 셜록이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뒤로 뺐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잘난 척만 하던 그가 이렇게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은 처음 보았다. 그 표정에 왠지 장난기가 일어난 존은 셜록의 작은 머리통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서 마구 비비고 헝클어뜨렸다. Don't하고 짧은 소리를 지른 셜록은 도리질을 하며 뒤로 도망갔지만 남자 둘만 앉아도 빠듯한 작은 소파에서 더 도망칠 곳은 없었다. 의자 팔걸이에 등이 부딪쳐서 멈칫한 셜록을 존이 소파 쿠션 위에 쓰러뜨리고 버둥거리는 몸 위로 체중을 실었다. 셜록의 복슬복슬한 검은 머리칼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서 마음껏 뒤섞고 헝클어뜨리자 몸부림치던 셜록의 몸이 갑자기 축 늘어져버렸다.
“셜록?”
불현듯 걱정이 된 존이 손을 떼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까치집처럼 마구 흐트러진 검은 덤불 밑에서 잔뜩 토라진 얼굴이 존을 흘겨보고 있었다.
“다 끝났어요? 그렇다면 어서 비켜요. 무겁다고요.”
정색을 하면서 삐진 셜록의 얼굴을 본 존은 그가 이런 종류의 스킨십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형도 있으면서 이런 장난을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걸까? 하긴 오늘 만난 그의 형님이 이렇게 강아지들이 서로 물고 까부는 것 같은 장난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군대에서 지내면서 남자들끼리의 과격한 투닥거림에 익숙했던 존은 그렇지 않은 셜록에게 이런 장난을 친 것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존은 사과의 의미로 엉망이 된 셜록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미안. 네가 같은 캠프의 동료가 아니란 걸 잊고 있었어.”
“현실 적응 좀 하시죠. 여긴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런던. 난 같은 캠프의 병사가 아니라 당신의 플랫메이트라고요.”
셜록은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리면서 쏘아붙였지만 헝클어진 머리칼을 풀어주는 존의 손길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엉킨 머리칼 사이에 작지만 단단한 손가락을 넣고 한 올 한 올 풀어주는 존의 손길이 불쾌한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마에 내려온 머리칼을 쓸어 올려줬을 때 셜록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을 보고 존은 그가 난폭한 장난은 싫어해도 부드러운 터치는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아이고, 이 오냐오냐 자란 도련님 같으니라고.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특별히 서비스 해주지.
존은 셜록의 몸에 완전히 체중을 싣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셜록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던 손을 목덜미로 미끄러뜨렸다. 아니나 다를까 셜록의 목덜미 근육은 단단히 굳어있었다. 어깨 재활 훈련을 할 때 배운 마사지식으로 승모근을 꽉 움켜쥐자 아팠는지 셜록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근육의 결대로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주물러주자 찡그린 미간이 펴지고 경직된 입가가 이완되었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기분 좋아, 셜록?”
“…별로.”
얼굴에 기분 좋다고 다 써있는데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셜록이 얄미워졌다. 존은 목덜미 근육에서 가장 효과적인 압점을 집고 꽉 눌렀다. 그러자 셜록이 눈을 꼭 감아버리면서 ‘아….’ 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가 마치 고양이가 고롱거리는 소리 같아서 존은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미안, 아팠어?”
“………별로.”
“그럼 계속해?”
“…당신이 계속 하고 싶다면.”
존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셜록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편히 늘어뜨렸다. 긴 다리가 소파에 다 들어가지 않아서 한쪽은 밖으로 삐져나갔지만 딱히 불편해 보이진 않았다. 존은 셜록의 표정 변화를 관찰하면서 슬슬 풀어지기 시작한 목덜미와 두피, 어깨를 조물조물 주무르고 마사지해주었다. 셜록의 피부는 존보다 얇고 서늘해서 손끝에 와 닿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얼마나 계속했을까. 이마에 땀이 배고 힘주어 꾹꾹 누르던 손가락이 저려올 때쯤, 존은 셜록의 표정에서 변화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존의 손길에 따라 미간을 찌푸리기도, 기분 좋게 입 끝을 치켜 올리기도 했던 셜록의 얼굴에는 고요한 평온만이 떠올라 있었다. 존은 셜록의 목덜미에서 손을 떼고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셜록?”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조용히 가라앉은 숨소리뿐이었다.
“자는구나.”
존은 셜록이 깨지 않도록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있으니 신경질적으로 보이지도 차가워보이지도 않았다. 기분 좋게 잠든 탓인지 살짝 입을 벌리고 자는 그의 표정은 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루 종일 그 난리를 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잠이 안 온다고 자던 사람 불러내서 귀찮게 굴던 녀석이 이렇게 순진한 얼굴로 잠들다니 이건 반칙이야. 조금 심술이 난 존은 셜록의 높은 코끝을 두 손가락으로 집고 지그시 눌렀다. 그러나 코가 막힌 줄도 모르고 쿨쿨 자던 셜록은 호흡이 힘들어지자 잠결에 미간을 찡그리며 입으로 숨을 컥 들이켰다. 찔끔 놀란 존이 손을 떼고 셜록의 안색을 살폈지만 셜록은 다시 편안한 숨소리를 내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수면장애라고? 잘만 자잖아….”
존은 어이없는 눈으로 셜록을 내려다보았다. 사건을 해결한 날은 잠을 못 잔다던 그의 말은 자신을 놀리기 위한 허풍이었을까? 아니면 그도 이제야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네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다섯 번째로 셜록의 목숨을 위협하던 택시 운전수를 주저 없이 쏘아 맞췄을 때, 손아귀에서 짜릿하게 퍼지던 반가움과 해방감처럼. 홀로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잠 못 이루며 뒤척이거나 겨우 잠들어서도 악몽을 꾸다 식은땀에 흠씬 젖어서 벌떡 일어나던 자신을 아기 양처럼 잠들게 해준 무언가를.
…그것이 목 마사지는 아닌 것 같지만.
존은 조용히 뒤로 물러나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프링이 삐걱거렸지만 셜록은 좀처럼 깨지 않았다. 투닥거리느라 바닥에 떨어진 무릎담요를 집어든 존은 셜록의 몸에 잘 덮어 주었다.
“Sweet dream, Sherlock.”
담요 위로 셜록의 어깨를 다독여준 존은 발소리를 죽여서 조심스럽게 거실을 나왔다. 셜록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었더니 다시 잠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대로 잠들면 꿈도 꾸지 않고 달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존은 하품을 하면서 침실로 올라갔다. 썰렁해진 시트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눈을 감자마자 따뜻한 잠의 샘이 다시 존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존은 아래층 소파에서 곤히 자고 있는 정신 나간 천재처럼 곧 깊이 잠들었다.
그때 셜록을 잠들게 한 것이 무엇인지 존이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셜록 선점용 글.
블로그 개설하면서 셜존셜로 수위가 없는게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셜록, 나 왔………으악!”
무거운 식료품 봉지를 안고 계단을 올라온 존은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함을 하고 말았다. 계란과 피클병과 우유와 토마토 등등이 든 봉지를 발등 위로 떨어뜨리지 않은 것이 용했다. 그랬다면 익히지 않은 오믈렛으로 엉망이 된 마룻바닥을 오후 내내 닦아내야 했을 테니까. 겨우 봉지를 옆에 내려놓은 존은 자신이 뭔가 잘못 본 게 아닌가 눈을 끔뻑이며 창가를 바라보았다. 존의 플랫메이트인 셜록 홈즈가 흠뻑 젖은 알몸에 얇은 가운만 겨우 걸친 채 키보드를 맹렬하게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셔, 셜록…? 뭐하는 거야?”
셜록은 존의 물음에도 돌아보지 않고 키보드를 치며 대답했다.
“보면 모르겠어? 이틀째 붙잡고 있던 살인사건의 트릭을 풀고 있는 중이잖아. 샤워하다가 갑자기 돌파구가 떠올랐거든.”
아, 그래서….
―하고 쉽게 납득하는 자신이 셜록과 지나치게 붙어 지냈다고 존은 생각했다. 이젠 냉장고 속에 사람 머리가 있어도, 선반 위에 해골이 놓여있어도, 전자렌지 안에 안구가 있어도 놀라지 않았다. 지금처럼 셜록이 2010년의 아르키메데스 같은 짓을 하고 있어도 그의 말 한 마디에 금방 납득하고 익숙해져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는 것을.
같은 집에서 일어나 사건이 없을 땐 함께 먹고 사건이 생겼을 땐 함께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같은 집으로 돌아와서 한 지붕 아래 잠드는 존과 셜록은 이미 플랫메이트라고 하기에도 친구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연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거리에 있었다. 마치 방안 깊숙이 의자에 앉아있는 셜록과 문가에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자신의 거리처럼. 존은 탁탁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타자를 치고 있는 셜록을 뒤로 하고서 말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내려왔을 때 그의 손엔 커다란 타월이 들려 있었다.
존은 조용히 셜록의 등 뒤로 다가갔다. 셜록의 젖은 몸에는 짙은 물빛으로 변한 얇은 가운이 어깨와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앞도 여미지 않은 옷깃 사이로 적절한 근육만 잡힌 마른 가슴이 엿보였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납작한 배와 옴폭한 배꼽도 보였다. 타자에 몰입하느라 편히 벌어진 두 다리 사이엔 아슬아슬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칼 끝과 팔꿈치에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의자와 바닥과 책상 가장자리는 셜록이 흘린 물기로 젖어있었다. 존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젖어서 더 구불거리는 셜록의 검은 머리 위로 타월을 덮었다. 그러자 셜록이 타자치는 손을 멈추지 않고 물었다.
“뭐하는 거지?”
“이대로 있다간 감기 걸려, 셜록.”
존은 셜록의 젖은 머리칼을 타월로 그러모아 물기를 짜고 두피를 살살 문질러서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셜록은 그런 존을 제지하지 않고 탁탁탁 타자에 열중했다. 존은 셜록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휘저으며 말리고 젖은 귀 뒤와 귓바퀴를 닦아주고 이마와 목덜미와 어깨의 물기도 타월로 톡톡 두드려주었다. 존의 따뜻한 손가락이 셜록의 서늘한 살갗을 어루만지자 기분 탓인지 셜록의 타자치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는 것 같았다. 존이 셜록의 턱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고 목과 쇄골, 가슴까지 닦아내려갔을 때, 여태까지 말이 없던 셜록이 뿌루퉁하게 입을 열었다.
“…존, 방해 돼.”
“아, 미안. 머리만 좀 더 말리면 되는데 그만 할까?”
존은 셜록의 몸을 닦아주던 손을 멈추고 물었다. 상반신의 물기는 대충 닦아냈으니 지금 그만둬도 감기에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머리까지 다 말리면 더 좋겠지만. 존이 선뜻 물러나려 하자 셜록은 흘깃 뒤를 돌아보더니 말없이 다시 작업으로 돌아갔다.
“계속해도 좋아. 난 멀티테스킹이 가능하니까.”
존은 흡사 흠뻑 젖은 꼬락서니로 주인에게 다가와서 ‘내 털을 말리도록 허락해줄게’ 라고 새침을 떼는 버릇없는 강아지 같은 셜록의 태도에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물론 진짜로 웃어버렸다간 셜록이 자신에게 며칠 동안이나 갖은 심술을 부렸겠지만. 다행히 소리 없이 미소만 지은 존은 셜록의 머리를 타월로 부드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날 존이 셜록의 머리칼을 다 말려줄 때까지 셜록의 타자소리는 아주 아주 천천히 이어졌고 존은 쿡쿡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꽤 고생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