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치아……. 느낌이 이상하군.”
바로 그 새로운 이빨들이 문제였다.
재생성한 닥터는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닥터답게 새 몸에 금방 익숙해졌다. 전보다 한층 젊어진 육체는 생기가 넘쳤고 혼자서만 알아듣는 횡설수설도 몇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새로 난 치열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었다. 신나서 조잘조잘 떠들어대다가 혀나 입술을 깨물기 일쑤였다.
“그 행성은 정말 근사한 곳이었어. 자넨 가본 적 없다고 했지? 안타깝군. 분명히 좋아했을 텐데. 그리고 그 행성 사람들도 자네를 좋아했을 거야.”
로즈가 잠시 집으로 돌아간 사이에 둘이서 타디스를 지키게 된 닥터와 잭은 언제나 그렇듯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잭이 51세기 시간요원으로 활동하며 쌓은 여행 경력은 닥터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빈약했지만 그래도 닥터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 때문인지 닥터는 잭과 둘이 대화할 때는 평소보다 더 달변이 되었다.
“아주 외진 은하계에 위치한 작은 행성인데 거기 사는 주민들은……아얏!”
신이 나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던 닥터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입을 손으로 가렸다.
아아, 또 혀를 깨문 모양이다.
잭은 입에 손을 대고 아파서 말을 못 잇고 있는 닥터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디 봐요. 많이 아픈가 보네.”
상처를 보려고 해도 닥터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을 뿐, 손을 떼려 하지 않았다.
젊은 몸으로 재생성하더니 성격도 애가 되어버렸나 고집은…….
잭은 한숨을 쉬며 닥터의 뺨을 부드럽게 두 손으로 감쌌다.
“닥터, 이게 벌써 몇 번째에요? 로즈가 돌아왔을 때 닥터 입술이 퉁퉁 부어있으면 내가 혼난단 말이에요. 어디 좀 보자고요.”
잭의 설득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재생성한 이후로 좀 서먹해하는 로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는지 닥터가 입에 대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잭은 약간 벌어진 닥터의 얇은 입술을 살살 만져보며 상처를 찾았다. 아랫입술을 조심스럽게 뒤집자 안쪽의 예민한 살에서 피가 살짝 배어나오고 있었다.
“여기네요. 별로 깊지 않아요. 혀가 다친 건 아니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잭은 자신이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갸름한 얼굴이 말 잘 듣는 어린애처럼 끄덕끄덕하는 것을 보고 갑자기 장난기가 동했다.
“내가 빨리 낫는 방법 가르쳐줄까요?”
잭이 저렇게 말할 때는 뭔가 꿍꿍이가 있는 법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닥터는 황급히 몸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목표를 포착한 잭은 닥터의 뺨을 적당한 힘으로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탄력 있는 잭의 입술이 재빨리 다가와 닥터의 입술에 포개졌다.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입술 끝을 살짝 건드렸다가 떨어지는 가벼운 키스였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닥터는 깃털 같은 느낌의 키스에 안심해서 반사적으로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짓궂은 웃음을 띤 잭이 다시 키스를 해왔다. 이번엔 혀를 밀어 넣고 입술 안쪽의 상처를 핥았다. 이미 피가 그친 모양인지 잭의 혀끝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물기어린 점막의 감촉과 따뜻한 숨결, 달콤한 키스의 맛 밖에는.
“어때요? 이제 안 아프죠?”
아까보다 훨씬 길고 농염한 입맞춤을 끝내고 얼굴을 놓아주자 닥터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몇 번을 타일러도 말을 안 듣는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주인 같은 얼굴이었다. 그 눈빛에 이제 슬슬 도망가야 할 때란 걸 직감한 잭은 말없이 뒤로 물러나서 타디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왠지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런 잭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닥터는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잭의 말처럼 정말로 아픔이 사라져 있었다. 잭이 아무리 51세기 인간이라고 해도 인간은 상대방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돌연변이가 지닌 특별한 능력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닥터가 알고 있는 캡틴 잭 하크니스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괘씸한 마음은 벌써 온데 간데 사라지고 호기심이 솟구쳤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 닥터는 혼날까봐 슬쩍 도망치는 잭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영업 비밀이에요~. 알고 싶으면 얼마든지 더 해드리죠.”
예상대로 뺀질뺀질한 대답이 돌아왔다.
닥터는 피식 웃으며 잭을 그냥 봐주기로 했다.
잭이 무슨 사기를 친 건지 알 기회는 앞으로도 많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