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선점용 글.
블로그 개설하면서 셜존셜로 수위가 없는게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셜록, 나 왔………으악!”
무거운 식료품 봉지를 안고 계단을 올라온 존은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함을 하고 말았다. 계란과 피클병과 우유와 토마토 등등이 든 봉지를 발등 위로 떨어뜨리지 않은 것이 용했다. 그랬다면 익히지 않은 오믈렛으로 엉망이 된 마룻바닥을 오후 내내 닦아내야 했을 테니까. 겨우 봉지를 옆에 내려놓은 존은 자신이 뭔가 잘못 본 게 아닌가 눈을 끔뻑이며 창가를 바라보았다. 존의 플랫메이트인 셜록 홈즈가 흠뻑 젖은 알몸에 얇은 가운만 겨우 걸친 채 키보드를 맹렬하게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셔, 셜록…? 뭐하는 거야?”
셜록은 존의 물음에도 돌아보지 않고 키보드를 치며 대답했다.
“보면 모르겠어? 이틀째 붙잡고 있던 살인사건의 트릭을 풀고 있는 중이잖아. 샤워하다가 갑자기 돌파구가 떠올랐거든.”
아, 그래서….
―하고 쉽게 납득하는 자신이 셜록과 지나치게 붙어 지냈다고 존은 생각했다. 이젠 냉장고 속에 사람 머리가 있어도, 선반 위에 해골이 놓여있어도, 전자렌지 안에 안구가 있어도 놀라지 않았다. 지금처럼 셜록이 2010년의 아르키메데스 같은 짓을 하고 있어도 그의 말 한 마디에 금방 납득하고 익숙해져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는 것을.
같은 집에서 일어나 사건이 없을 땐 함께 먹고 사건이 생겼을 땐 함께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같은 집으로 돌아와서 한 지붕 아래 잠드는 존과 셜록은 이미 플랫메이트라고 하기에도 친구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연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거리에 있었다. 마치 방안 깊숙이 의자에 앉아있는 셜록과 문가에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자신의 거리처럼. 존은 탁탁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타자를 치고 있는 셜록을 뒤로 하고서 말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내려왔을 때 그의 손엔 커다란 타월이 들려 있었다.
존은 조용히 셜록의 등 뒤로 다가갔다. 셜록의 젖은 몸에는 짙은 물빛으로 변한 얇은 가운이 어깨와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앞도 여미지 않은 옷깃 사이로 적절한 근육만 잡힌 마른 가슴이 엿보였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납작한 배와 옴폭한 배꼽도 보였다. 타자에 몰입하느라 편히 벌어진 두 다리 사이엔 아슬아슬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칼 끝과 팔꿈치에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의자와 바닥과 책상 가장자리는 셜록이 흘린 물기로 젖어있었다. 존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젖어서 더 구불거리는 셜록의 검은 머리 위로 타월을 덮었다. 그러자 셜록이 타자치는 손을 멈추지 않고 물었다.
“뭐하는 거지?”
“이대로 있다간 감기 걸려, 셜록.”
존은 셜록의 젖은 머리칼을 타월로 그러모아 물기를 짜고 두피를 살살 문질러서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셜록은 그런 존을 제지하지 않고 탁탁탁 타자에 열중했다. 존은 셜록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휘저으며 말리고 젖은 귀 뒤와 귓바퀴를 닦아주고 이마와 목덜미와 어깨의 물기도 타월로 톡톡 두드려주었다. 존의 따뜻한 손가락이 셜록의 서늘한 살갗을 어루만지자 기분 탓인지 셜록의 타자치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는 것 같았다. 존이 셜록의 턱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고 목과 쇄골, 가슴까지 닦아내려갔을 때, 여태까지 말이 없던 셜록이 뿌루퉁하게 입을 열었다.
“…존, 방해 돼.”
“아, 미안. 머리만 좀 더 말리면 되는데 그만 할까?”
존은 셜록의 몸을 닦아주던 손을 멈추고 물었다. 상반신의 물기는 대충 닦아냈으니 지금 그만둬도 감기에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머리까지 다 말리면 더 좋겠지만. 존이 선뜻 물러나려 하자 셜록은 흘깃 뒤를 돌아보더니 말없이 다시 작업으로 돌아갔다.
“계속해도 좋아. 난 멀티테스킹이 가능하니까.”
존은 흡사 흠뻑 젖은 꼬락서니로 주인에게 다가와서 ‘내 털을 말리도록 허락해줄게’ 라고 새침을 떼는 버릇없는 강아지 같은 셜록의 태도에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물론 진짜로 웃어버렸다간 셜록이 자신에게 며칠 동안이나 갖은 심술을 부렸겠지만. 다행히 소리 없이 미소만 지은 존은 셜록의 머리를 타월로 부드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날 존이 셜록의 머리칼을 다 말려줄 때까지 셜록의 타자소리는 아주 아주 천천히 이어졌고 존은 쿡쿡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꽤 고생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