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만 대면 잘 자는 내가 1시간을 뒤척거리다가 일어나서 할일없어 빌빌대다 쓴 글.
셜존은 고즈넉할때 잘 나오는 경향이 있다. 동거물이라서 그런가ㅎㅎ
벨소리가 울린다.
내버려두었다.
끈질기게 울어댄 핸드폰 벨소리는 정확히 13번의 울음 끝에 침묵했다.
잠시 후 문자 수신을 알리는 전자음이 따라붙었다.
작은 셀폰으로 알파벳을 치는 걸 싫어하는 주제에 꽤 애가 탄 모양이다.
굳이 액정을 켜고 보지 않아도 문자 내용은 알만했다.
셜록은 커피 테이블 위의 핸드폰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계속 누워있었다.
다리를 다 수납하지 못하는 소파는 불편했다.
창밖에서 정오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쿵쿵.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와 소리사이의 간극이 먼 이유는 그가 바쁘게 두 계단씩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탕탕탕.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칼칼한 외침이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셜록! 셜록, 안에 있나? 날세.”
셜록은 대답하지 않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빛바랜 천장 회칠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있었다.
“셜록.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있네.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도 있어.”
이 자리에 자주 누워있었지만 저런 균열을 발견한 건 처음이다.
물이라도 새는 걸까.
불가능하다.
이 천장 위쪽엔 배관시설이 없지 않은가.
“…………알았네.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주게. 기다리겠네.”
내려가는 발소리의 간극은 짧았다.
한 계단씩 내려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셜록은 눈을 깜빡였다.
가까스로 보였던 천장의 균열이 점점 흐릿해졌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셜록? 파이를 구웠는데 먹겠니?”
똑똑 노크하는 소리, 조심스러운 소프라노.
밀가루와 버터와 설탕이 가열된 달콤한 냄새가 텅 빈 위장을 자극했다.
그러나 셜록은 공복감을 관리하는데 익숙했다.
“크럼블을 올린 복숭아 파이란다. 저번에 맛있다며 세 조각이나 먹지 않았니.”
아니요, 크럼블을 무릎 위에 부슬부슬 흘려가며 세 조각이나 해치운 사람은 내가 아니었어요.
그 파이를 먹고 난 후에 그의 손가락과 입술에선 한참동안 캐러멜과 복숭아향이 났었죠.
“몇 조각 남겨둘 테니 생각나면 얘기하려무나.”
노래하듯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파이 향내와 함께 천천히 멀어졌다.
그녀가 남긴 공명과 향기가 사라지자 어둑어둑한 방안엔 완벽한 침묵이 찾아왔다.
셜록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건조한 안구 위로 눅눅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늦게 221B로 돌아온 존은 어두운 방안에 불을 켜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컴컴한 거실에 셜록이 우두커니 서있었던 것이다. 그의 복장은 존이 급한 호출을 받고 달려 나가기 직전에 봤던, 코트와 머플러까지 두른 차림 그대로였다.
“…셜록? 거기서 뭐하고 있어? 방금 들어온 거야?”
대답이 없었다. 셜록은 거실 한 가운데에 뻣뻣이 서서 무표정하게 고개를 존에게 향하고 있었다. 존은 그에게 가보기 전에 먼저 두 팔에 안고 있는 식료품과 포장음식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놓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상태 역시 존이 나가기 전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안 치운 접시 위에 말라붙은 피클 찌꺼기의 건조 상태가 아침보다 더 진행되었다는 것 정도일까. 존은 한숨을 내쉬며 일단 식료품 봉투를 식탁에 내려놓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접시들을 거둬서 개수대에 넣었다.
“아깐 정말 미안했어, 셜록. 오늘 비번이라고 분명히 말해뒀는데 응급 환자가 들어와서. 그 환자는 결국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어.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았는데 나까지 수술실에……셔, 셜록?!”
갑자기 어깨와 등에 묵직하게 실리는 무게를 느끼고 존은 당황했다. 소리도 없이 다가온 셜록이 존의 두 어깨에 두 팔을 얹고 기대온 것이다. 두 사람의 키 차이 덕분에 존은 셜록의 검은 코트 안에 푹 파묻히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셜록.”
그저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는 셜록의 무게는 존이 짜부라져 버릴 만큼 무겁지 않았다. 그가 적절히 체중을 분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등 뒤에서 흘러들어오는 셜록의 체취에선 런던 거리의 매연 냄새가 섞여있지 않았다. 등에 맞닿은 셜록의 코트도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건 밖에서 오래 걸었던 존의 체온이었다. 셜록의 뾰족한 턱이 존의 차가워진 머리칼을 헤치고 정수리를 내리눌렀다. 존은 셜록처럼 천재적인 탐정이 아니었지만 연인의 포옹이 아닌 아이처럼 엉겨 붙은 셜록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추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늘 같이 피크닉 못가서 미안해, 셜록.”
어깨에 걸쳐진 두 팔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해주자 등에 밀착된 셜록의 무게가 살짝 흔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균형을 잡은 셜록은 말없이 존을 끌어안고 오래오래 서있었다. 차가워진 존의 체온이 셜록과 비슷한 온도로 전도되었을 즈음, 머리 위에서 가슬가슬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쿵파오 치킨인가?”
셜록의 긴 팔이 뻗어나가서 식탁 위에 놓아둔 음식 봉투를 뒤적였다. 미안한 마음에 몇 블럭 더 걸어가서 셜록이 좋아하는 중국음식점에서 사온 메뉴들이었다. 존은 셜록을 등에 업은 채로 봉투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종이곽을 하나씩 식탁 위에 꺼내놓았다.
“응, 그리고 진저 포크와 누들. 포춘 쿠키를 잔뜩 얻어왔으니 나중에 안에 무슨 내용이 들었는지 맞추기 게임을 하자고.”
그러자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웃는 기척이 전해졌다.
“오, 존. 자넨 날 이기지 못해.”
하루 종일 입을 열지 않은 듯 다소 쉬어있는 목소리였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건방진 말투였다. 그러면서도 배가 고픈 듯 어깨너머로 음식 봉투를 부스럭거리고 있는 셜록의 팔을 보며 존의 얼굴에도 미소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