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배포전에 레스트레이드x셜록x레스트레이드 19금 소설 [Between the Glassbox] 들고갑니다.
옛날 옛날에 모처에서 유리상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썰을 소설로 다시 쓴 책입니다. 현대 배경 AU로 셜록은 탐정이 아니고 레스트레이드도 경찰이 아닌 설정이에요. 기존 연재 내용에 추가된 부분이 있고 번외로 후일담이 들어갑니다.
※ 커플링 주의 ※ 셜록X레스트레이드와 레스트레이드X셜록이 공존하는 19금 리버시블입니다. 씬 나옵니다. 취향타는 소재도 나옵니다.. + 어이쿠 까먹었는데 마존 설정도 있습니다.
A5 출력본 / 182P / 컬러표지 / 8000원 / 19금 (93년생부터 구입 가능)
표지는 저와 트윈 부스로 참가하시는 티캣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ㅠㅠ
부수는 예약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소량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ㅎㅎ 통판 예정은 아직 없어요. 배포전에서 신분증 확인 후에 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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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나왔습니다. 182페이지! 늘어났습니다...ㅋ....ㅋ... 가격 확정했습니다. 8000원입니다.
예약 마감했습니다! 예약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배포전에서 뵙겠습니다! 부스위치는 H07입니다.
sample 1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은 샤워부스보다 조금 큰 크기의 유리 상자였다. 유리 상자를 둘러싼 남자들은 무대를 구경하는 사람들처럼 환호하거나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들은 말없이 침을 삼키며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안에 뭐가 있기에 저렇게 열심히들 보고 있나. 궁금해진 레스트레이드는 남자들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들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상자 안엔 검은 머리의 청년이 들어 있었다.
청년은 2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풍성한 검은 웨이브 헤어에 창백할 만큼 하얀 피부. 적절하게 잔 근육이 잡힌 마른 몸엔 딱 붙는 가죽바지와 가죽조끼를 걸치고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징 박힌 가죽부츠, 역시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검은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다. 액세서리는 길고 날씬한 목에 찬 은제 초커 하나가 다였다. 신체가 노출된 부분이 가슴과 배, 팔꿈치 위쪽밖에 없었지만 하얀 피부와 검은 에나멜의 대비가 다 벗은 것보다 더 에로틱하게 보였다. 보아하니 청년은 유리 상자 속에서 춤을 추며 스트립쇼를 하는 모양이었다. 상자 위엔 디지털시계가 붙어있었는데 커다란 액정에서 숫자가 막 10에서 9로 바뀐 참이었다. 저 숫자가 0이 되면 돈을 넣어야하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청년은 무대 위의 바니걸들처럼 웃으며 애교를 떨지도, 봉춤을 추는 근육남들처럼 육체미를 과시하지도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도도하게 치켜든 채 유리벽에 기대어 선 그는 한쪽 가죽장갑의 가운데 손끝을 깨물었다. 하얀 앞니를 살짝 드러낸 채로 팔을 당기자 팔꿈치까지 감싼 긴 가죽장갑이 천천히 벗겨졌다. 애태우듯 천천히 벗겨지는 장갑과 그 밑에서 드러나는 희고 긴 팔과 손목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 레스트레이드는 빽빽이 서있는 남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장갑을 다 벗겨낸 청년은 무심한 표정으로 손님들을 둘러보다가 장갑을 홱 내던졌다. 청년이 던진 장갑은 마침 원의 제일 앞줄로 나온 레스트레이드 바로 앞에 있는 유리벽에 맞고 떨어졌다. 흠칫 놀란 레스트레이드와 청년의 눈이 마주쳤다. 청년의 눈동자는 겨울날의 하늘보다 더 차가운 아이스블루였다. 자신을 쏘아보는 청년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친 순간, 레스트레이드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찬 손으로 심장을 꽉 움켜쥔 기분이었다. 청년은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는 레스트레이드가 우스웠는지 피식 웃어주었다. 청년의 눈가가 살풋 가늘어지면서 색이 연한 입술에 웃음기가 떠오르자 레스트레이드는 차가운 손에 쥐어진 심장이 물처럼 스르르 녹아서 없어져버리는 것 같았다.
청년이 느릿느릿 장갑을 다 벗고 가죽부츠도 벗고 맨발이 되었을 때, 상자의 시계가 00:00이 되었다. 그러자 애초에 그리 밝지도 않았던 상자의 불이 꺼지며 청년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남자들이 큰 소리로 불평하는 소리에 넋을 잃고 있던 레스트레이드도 정신이 들었다. 다시 불을 켜라고 안달하는 손님들에게 마릴린 먼로 같은 차림의 여장남자가 와서 초반 10분은 서비스로 보여주고 그 다음부터는 돈을 낸 손님에게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투덜거리는 손님들 중에서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려는 남자가 보이자 레스트레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택시비로 꺼냈던 돈을 유리 상자의 돈 창구에 재빨리 쑤셔 넣었다. 그가 오늘 밤 청년의 첫 번째 손님이 된 것이다.
sample 2
뒷문으로 끌려 나간 레스트레이드는 어두운 골목에서 흠씬 두들겨 맞았다. 원래 몸싸움에 익숙한 타입도 아닌데다 잘 먹지도 못하고 폐인처럼 지낸 중년의 레스트레이드가 젊고 건장한 경호원들과 맞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레스트레이드의 바다보다도 깊은 분노는 안젤로의 바디 블로를 정통으로 맞고 물거품처럼 사그라졌다. 솥뚜껑 같이 거대한 주먹이 뱃속을 뚫고 들어와서 내장을 후려치는데 분노 그딴 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때 눈앞에 하얘졌는지 까매졌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땅바닥에 웅크려서 달팽이처럼 몸을 동글게 말고 몰매를 맞고 있었다. 너무 아파서 잘못했다고 그만하라고 아프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늘씬하게 두들겨 맞은 레스트레이드는 뒷골목 쓰레기 더미 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그에게 침을 탁 뱉은 안젤로는 또 난동을 부리면 그땐 이 정도로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고 사라졌다. 레스트레이드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쓰레기 더미 위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온몸이 아프고 자존심도 아팠다. 번듯한 회사에서 한 부서를 이끌던 자신이, 멀쩡한 가정을 가지고 넓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굴리던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몰락해서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이다. 이 쓰레기 더미는 몰락한 자신의 종착역이었다. 더 떨어져봤자 여기보다 더 비참할까. 이 더러운 밑바닥으로 떨어지면서까지 원한 것은 오직 셜록뿐이었는데 그를 만져본 적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자신은 그저 그를 구경하며 욕정을 채우는 손님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는 돈이 없어서 그것조차 못하게 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레스트레이드는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비참해져서 울음이 나왔다.
엉망이 된 얼굴로 꺽꺽대며 우는 그의 앞에 길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레스트레이드는 누가 곁에 다가왔다는 걸 알아도 상관하지 않았다. 우는 쓰레기나 안 우는 쓰레기나 어차피 똑같은 쓰레기. 이 한심한 꼬락서니를 해가지고 억지로 안 우는 척 해봤자 세워질 체면도 남아있지 않았다.
서글프게 이어지는 레스트레이드의 흐느낌 위로 건조한 저음이 내려앉았다.
“왜 울지?”
어딘가 묘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레스트레이드는 부어오른 눈을 겨우 뜨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무 아파서 이젠 헛것이 보이는 모양이다. 긴 코트를 걸치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셜록이었다. 본디지가 아닌 멀쩡한 옷을 입은 모습은 처음 보았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 캐시미어 코트와 짙은 색 머플러를 두른 셜록은 유흥업소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하고 기품이 있었다. 레스트레이드는 자신이 환상을 보는 것이 아닐까 눈을 의심하며 멍하게 셜록을 올려다보았다. 셜록이 다시 물었다.
“왜 우냐고 묻잖아, 아저씨.”
어쩐지 높고 투명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과는 달리, 진짜 셜록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깊은 울림이 있는 저음이었다. 음역이 낮은데도 저음 특유의 묵직한 느낌은 없고 대신 세련된 발음과 깊이가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도 레스트레이드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셜록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었다.
“내 자신이 비참해서요. 난 이제 더 떨어질 곳도 없어요….”
그 말에 웃는 소리가 들렸다. 셜록이 레스트레이드를 내려다보며 입 끝을 치켜 올리고 피식 웃고 있었다. 그 미소는 상자 안에서 다정하게 지어주던 미소와는 달리 몹시 차가웠다. 레스트레이드는 처음 셜록을 봤을 때처럼 찬 손이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기분을 다시 맛봤다. 입가에서 웃음을 지운 셜록은 레스트레이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랑 가겠어?”
레스트레이드는 얼떨떨한 얼굴로 셜록을 쳐다보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셜록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유리벽 너머가 아니라 실제로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이게 꿈이라면 깨지 말아야지. 그리고 이게 현실이라면…. 레스트레이드는 피 묻은 손으로 셜록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셜록은 손에 피와 오물이 묻는 것도 개의치 않고 레스트레이드를 일으켜 주었다. 몸을 일으켰더니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레스트레이드는 제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셜록에게 의지한 채 한참을 윽윽거리며 신음해야 했다. 그의 등이 어느 정도 펴지자 셜록은 손을 잡아끌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친 사람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보폭과 속도에 레스트레이드는 발을 질질 끌며 필사적으로 따라갔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나오는 글은 커플명을 뭐라고 표기해야할지 정말 애매하다 ´ㅅ`
아무튼 성반전한 여체 레레와 셜록이 나오는 글입니다...
별건 안 나오지만 성반전이 껄끄러우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
“애초에 너 같은 일반인을 현장에 들여보내는 게 아니었어! 경감님은 뭐 하러 이런…!”
“그건 현장의 전문가가 무능하다는 증거겠지.”
“뭐야? 이 또라이가?!”
“이봐, 그만해. 그래봤자 소용없는 거 알잖아.”
“알아! 아는데 이 녀석이 자꾸 열 받게 하잖아!”
기묘한 광경이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가정집 거실,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 사방에 자욱한 검은 먼지, 그 자욱한 먼지 속에서 왈왈대고 있는 푸른 보호복 차림의 남자들, 그리고 그 소동의 한가운데에 거만하게 서있는 검은 머리 청년.
셜록은 절대로 언성을 높이지 않았으나 무심하게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듣는 이의 분노를 높였고, 그를 둘러싼 언쟁의 열기 또한 부채질했다. 특히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검시관 앤더슨은 평소의 패기 없는 모습을 버리고 당장이라도 셜록의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그러나 앤더슨이 평생 후회할 짓을 저지르기 전에 힘 있는 알토 소프라노가 방안을 쩌렁하게 울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순간, 방안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그곳엔 뉴 스코틀랜드 야드의 민완경감인 레지나 레스트레이드가 서있었다.
레지나는 방안에 자욱한 재먼지를 보고 잘 다듬은 암회색 눈썹을 찌푸렸다. 반듯한 이마에서부터 깔끔하게 빗어 넘긴 숏컷 머리도 눈썹과 같은 색이었다. 레지나가 바닥에 늘어놓은 증거 태그를 피해 또각또각 구둣소리를 울리며 방안으로 들어오자 앤더슨이 선생님에게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쪼르르 달려왔다.
“Ma'am! 이 난장판 좀 보세요! 이 녀석이 증거를 찾는답시고 굴뚝 안을 들쑤셔서 현장을 이 꼴을 만들어 놨다구요!”
짙은 속눈썹에 감싸인 고동색 눈동자가 셜록을 향했다. 셜록은 앤더슨의 고자질에도 뉘우치는 기색조차 없이 굴뚝에서 쏟아져 내린 재로 엉망진창이 된 벽난로를 손가락질해 보였다.
“덕분에 범인의 발 치수와 구두 종류, 체형과 휴일에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 지까지 알아냈습니다만? You're welcome.”
“하지만 그 때문에 굴뚝 재가 방안으로 쏟아져서 현장이 엉망이 됐잖아?! 시신을 미리 덮어두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어?!”
“그랬다면 자네는 지금보다 더 무능한 검시의가 되었겠지.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뭐라고?!”
앤더슨의 울화통이 다시 폭발하려고 하자 레지나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둘 다 그만! 셜록, 밖으로 나가있어. 앤더슨, 피해자 시신이 더 오염되기 전에 어서 연구실로 가져가도록 해.”
두 사람은 놀랍게도 레지나의 판결이 탐탁지 않다는 것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두 사람이 만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셜록은 미간 사이에 주름을 잡았고, 앤더슨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지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못마땅함을 어필해도 이 현장의 책임자는 그녀였다.
“당장!”
레지나가 손바닥을 짝 치며 두 사람을 재촉했다. 그러자 멈춰있던 현장의 공기가 마치 환풍구가 열린 듯 경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셜록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나가버리자 앤더슨도 투덜대며 시신을 호송할 준비에 들어갔다.
척척 지시를 내리며 능숙하게 현장을 지휘한 레지나는 뒷일은 도노반에게 맡기고 조용히 뒷문으로 걸음을 돌렸다. 현장은 슬슬 마무리 되어갔지만 아직 마지막 순서가 남아있었다. 좁은 복도를 지나 예쁜 커튼이 쳐진 뒷문을 나오자 아기자기한 거실과 마찬가지로 아담하게 꾸며진 뒤뜰에 어울리지 않는 시커먼 그림자가 서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레지나가 다가가자 셜록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별 말은 없어도 아직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레지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이 토라진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탕을 쥐어주기로 했다.
“이제 굴뚝에서 찾은 증거가 뭔지 말해줘, 셜록.”
그러자 셜록은 두어 번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지금껏 꾹 참고 있던 추리를 단숨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범인은 굴뚝을 통해 거실로 침입했습니다. 굴뚝 안에 벽을 타고 내려온 흔적이 남아 있었어요. 또한 좁은 굴뚝 안에서 돌출된 신체가 쓸린 자국도 있었죠. 표면적으로 보아 비만한 복부. 유방의 흔적이 없는 걸로 보아 남성이겠군요.”
셜록은 잠시 레지나를 슬쩍 바라봤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굴뚝에 짚은 손발의 위치를 미루어 보건데 범인은 뛰어난 암벽등반가이거나 굴뚝청소부일 겁니다. 하지만 젊었을 때 이야기고 지금은 살이 쪄서 전성기의 실력이 나오기 힘들 겁니다. 그러니 현역 굴뚝청소부일 가능성은 낮지요. 또한, 오른쪽보다 왼쪽 다리가 긴 사람입니다. 어쩌면 다리에 부상을 입어서 등반을 그만두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 정도 굴뚝을 밧줄 없이 타고 내려온 것으로 보아 꾸준히 연습하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 주말에 인공암벽타기 연습장 같은 곳에 다녔겠지요. 근처 연습장을 조사해보세요. 피해자와 최근에 접촉한 사람과 교집합이 나올 겁니다.”
레지나는 감탄한 눈으로 셜록을 바라보았다. 셜록은 마치 격렬한 크레센도의 연주를 마치고 숨을 고르며 관객의 박수갈채를 기다리는 연주가처럼 레지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현장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 이렇게 상세한 추리를 뽑아내는 셜록의 능력은 언제 봐도 놀랍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살짝 상기된 채 숨을 고르고 있는 셜록의 얼굴은 레지나가 그에게 느끼는 통상적인 경이로움 말고도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그 모든 걸 굴뚝 안에서 배가 쓸린 자국으로 알아낸 거야?”
“전부 다는 아니지만 70% 이상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군요. 감식반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굴뚝재가 부서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굴뚝 안에 고개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현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말이지. 이것 봐, 여기도 지지가 묻었잖아. 잘생긴 얼굴이 이게 뭐야.”
셜록의 얼굴에 묻은 검댕을 보고 쿡쿡 웃은 레지나는 엄지에 침을 묻혀서 닦아주려고 했다. 그녀의 7살 난 아들에게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레지나의 손끝이 광대뼈와 뺨에 와 닿자 눈이 휘둥그레진 셜록은 얼른 고개를 흔들어서 도망쳐버렸다.
“무슨 짓이에요? 난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고요!”
셜록의 격렬한 반응에 무안해진 레지나는 지지 않고 외쳤다.
“나도 네 엄마가 아니야!”
네가 내 아들이었다면 삐딱하게 굴 때마다 엉덩이를 팡팡 때려주고 울상지은 얼굴에 잔뜩 뽀뽀해줬겠지.
레지나의 말에 셜록은 연한 제비꽃빛 눈동자로 노려보다가 홱 시선을 돌려버렸다. 귀찮은 듯 손등으로 슥 훔친 뺨에는 아직도 희미하게 검댕이 남아있었지만 레지나는 이번엔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아니었고, 자신도 그의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니었기에.
어색해진 레지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사건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래서…, 내가 찾아야할 사람은 굴뚝을 잘 타고 배가 나온 아저씨란 얘기지? 꼭 산타클로스 같군.”
하지만 레지나의 실없는 농담에 셜록은 싸늘한 눈빛으로 답했다. 완벽하게 토라진 셜록의 얼굴을 보고 레지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 까칠한 아이는 다루기가 정말 까다롭다. 좀 가까워졌다 싶으면 도망쳐버리고 서먹하게 대하면 말없이 토라져버린다. 미운 일곱 살도 이렇게 골치 아프진 않을 텐데.
셜록의 이런 돌발적인 추리엔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레지나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표정한 셜록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레지나는 그를 만난 이후로 벌써 몇 번째 물어봤는지 모를 질문을 또 다시 던졌다.
“어떻게 알았어?”
“당신은 평소보다 현장에 늦게 도착했죠. 옷은 평소 근무시간에 입는 바지 정장이 아닌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입었고요. 좋아하는 색깔로 옷을 차려입었기에 데이트였을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랬다면 좀 더 섹시한 옷을 입었겠죠. 지금 입은 옷은 PG(부모동반 관람가) 등급이군요.”
셜록의 시선이 무심하게 레지나의 올리브색 원피스를 훑고 지나갔다. 진주모양의 단추가 주르륵 달려서 목을 감싸는 우아한 디자인의 실크 원피스는 아름다웠고 레지나의 피부색과도 잘 어울렸지만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기엔 아쉬운 감이 있었다.
“그리고 몰고 온 차가 업무용으로 쓰는 BMW가 아니라 아동용 시트가 달린 SUV더군요. 아까 밖에 나오면서 주차장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런 점으로 보아 오늘 당신이 아들과 함께 있다가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죠. 하지만 오늘은 토요일이고 수업이 없는 날이죠. 그러니 초등학교의 수업 외 행사일 테고 결정적인 증거는….”
셜록은 천천히 손을 뻗어서 레지나의 어깨에 묻어있는 스티로폴 조각을 떼어주었다. 아이손톱만큼 작은 하얀 스티로폴은 1시간 반 전에 학교 강당에서 마구 흩뿌려댄 인공 눈송이였다.
“이것과 구두 굽에 달라 붙어있는 금색 종잇조각이었어요. 겨울 시즌에 눈이 등장할만한 아이들 연극이라면 크리스마스 캐럴이거나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 둘 중 하나겠지요.”
셜록의 폭풍 같은 추리가 끝나고 레지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셜록과 함께 일하게 된지 1년이 넘었지만 그가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줄은 몰랐다. 자신이 입는 옷, 타는 차, 아들의 나이, 좋아하는 색깔, 데이트 상대의 유무. 세상에 관심 있는 거라곤 오직 사건과 추리밖에 없는 것 같았던 이 까다로운 청년이 조용히 머릿속에 담고 있던 자신의 여러 부분들. 레지나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셜록을 바라보자 그는 잠시 시선을 마주보다가 곧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익숙한 그 모습에 레지나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돌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이었어. 우리 아들은 산타클로스 역이였지.”
“크리스마스 캐럴에 산타클로스가 나오나요?”
“안 나와. 애들에게 배역을 주려고 억지로 집어넣은 모양이야. 덕분에 우리 아들은 산타클로스가 진짜가 아니란 걸 깨달아버렸지. 그런데 산타가 나란 걸 알면 선물을 못 받을까봐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아.”
“아드님이 똑똑하군요. 나보단 못하지만. 난 1년 3개월에 산타클로스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머니와 거래를 했어요. 산타가 가짜란 걸 알지만 선물은 마다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사촌들에게 산타가 가짜란 걸 폭로해버리겠다고 했죠. 형은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오, 불쌍한 홈즈 부인! 우리 아들이 자네만큼 영악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레지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셜록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난 당신 아들이 아니라니까요.”
모처에서 셜록 여체, 존 여체는 나와도 레레 여체는 거의 안나오는 것 같아서 상상해봤다.
이름은 레레의 퍼스트네임 이니셜이 G라서 떠오르는 레지나. 세레명으로 하늘의 여왕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뉴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감인 레지나는 40대 초반 싱글맘ㅋㅋ 아들은 7살.
큰 키에 볼륨있는 몸매. 남성위주의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머리도 숏컷으로 자르고 단정한 바지정장을 입고 다니지만 사실 여성스러운 옷이 더 잘 어울리는 육감적인 미인ㅎㅎ
설정은 아주 마음에 드는데 계속 쓸지는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