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꽤 추워졌군.”
“벌써 영하로 떨어졌군요. 차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보르도를 두병이나 비우지 않았나. 아무리 나라도 경감 앞에서 음주운전을 할 만큼 강심장은 못되네.”
“레스토랑에서 대리운전수를 불러주겠다고 했을 텐데요.”
“내가 그러길 바라나?”
가로등 아래서 레스트레이드는 걸음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았다. 마이크로프트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스트레이드는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난감해지곤 했다.
“…아닙니다.”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가볍게 웃는 소리가 났다. 레스트레이드는 차가운 밤공기에도 귀 끝이 뜨끈해지는 걸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오랜만의 데이트였다. 이 비정기적인 만남을 데이트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전화를 걸고 약속을 잡고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만나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거기까지는 평범한 지인 사이에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손등을 감싸 쥐는 그의 부드러운 손.
그것은 명백히 악수가 아니었다.
카운터에 미리 맡겨둔 코트를 넘겨받아서 어깨에 걸쳐주는 그의 배려.
한 번도 그냥 넘겨준 적이 없다.
좁은 이인용 테이블 밑으로 스치는 그의 무릎.
무릎 안쪽을 지긋이 눌러올 때마다 숨이 가빠지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그리고 그의 눈빛.
살짝 가늘게 뜨고 빙그레 미소 짓는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괜스레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다시 그의 손.
차갑게 얼은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어와 깍지를 끼는 따뜻한 손가락.
그래. 지금처럼.
“장갑은 안 가지고 왔나.”
“깜빡 했습니다. 아직 10월이라서.”
“손이 다 얼었군.”
“괜찮습니다.”
“이리 줘보게.”
주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거침없는 손이 레레의 손을 깍지채로 잡아당겼다. 손끝부터 차게 언 손등에 따뜻한 입김이 끼얹어졌다.
“마이크로프트씨?”
놀라서 움찔거리는 레스트레이드의 반응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바닥보다 훨씬 따뜻한 입술이 손등 위에 내려앉았다. 작게 오므린 입술은 온기를 나눠주듯 손등 위를 부비고 도드라진 뼈와 뼈 사이를 살짝살짝 어루만졌다. 작은 벌새의 키스 같은 감촉이 레스트레이드의 마디진 손가락을 쓸어내렸다. 레스트레이드는 그가 온기를 전해주고 있는 손보다도 얼굴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마이크로프트씨!”
마이크로프트의 혀가 손가락 사이의 연약한 살을 핥았을 때, 레스트레이드는 못 참겠다는 듯 손을 거둬들였다. 마이크로프트는 의외로 순순히 손을 놓아주고 싱긋 웃었다.
“조금은 따뜻해졌나?”
전혀 머쓱해하는 기색도 없이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레스트레이드는 그를 나무랄 기운도 빠져버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들킬까봐 고개를 돌리는 것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 정도로 노골적인 구애를 끝끝내 모른 척할 만큼 순진한 나이도 아니다. 레스트레이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갑보다 따뜻하군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답하는 레스트레이드 앞에서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씩 웃었다. 그의 입가에 개구진 표정이 떠올랐다.
“그럼……입술은 춥지 않나?”
레스트레이드가 그 말의 의도를 헤아리기도 전에 입술 위에 보드라운 감촉이 와 닿았다. 순간 흠칫했던 레스트레이드는 이내 긴장을 풀고 그와 나누는 첫 키스를 위해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