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개진 소리에 눈이 떠졌다. 눈앞은 어둡고 군데군데 붉게 명멸했다. 흐릿한 시야 한가운데에 역시 흐릿한 덩어리가 있었다. 셜록은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눈꺼풀에 고여 있었던 액체가 눈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눈이 아프고 귀가 지잉 시렸다.
“…셜록!!!”
먹먹하게 틀어 막힌 귓속으로 자신의 이름이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낯익은 목소리다. 그래야만 했다. 귀가 뻥 뚫리자 뒤따라 눈도 맑아졌다. 잔뜩 찡그렸던 눈을 천천히 뜨자 역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젖고 긁히고 피 흘리고 놀란 얼굴. 그 동그란 얼굴이 걱정을 담뿍 담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셜록은 둔한 입술을 움직여서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턱을 움직인 순간 목구멍에 찰랑찰랑 차있던 물이 기침과 함께 울컥 뿜어져 나왔다.
“셜록! 괜찮아?”
기도에 들어간 물을 다 토해내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기침이 수반되었다. 겨우 숨 쉬기가 자유로워진 셜록은 안 아픈 데가 없는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았다. 그가 앉아있는 곳은 깨진 타일과 무너진 철근 콘크리트의 잔해로 뒤덮인 물웅덩이의 가장자리였다. 그때서야 조금씩 끊어졌던 기억이 이어졌다.
브루스 파팅턴 설계도, 모리아티의 게임, 수영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함정, 폭탄 조끼를 걸친 존, 가차 없이 쏟아지던 붉은 레이저 스팟, 그리고 한 발의 총성.
그 뒤로 기억이 없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엄청난 굉음과 자신의 허리를 잡아채는 재빠른 두 팔 뿐. 아마도 그 팔은 지금 눈앞에서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남자의 것이리라. 셜록은 까슬까슬 가라앉은 목소리로 비로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존….”
“셜록! 괜찮아? 숨을 쉬지 않길래 죽은 줄만 알았어!”
“난 괜찮아. 자네는? 다친 덴 없나?”
“없어! 아니, 여기저기 까지고 멍들긴 했지만 별건 아니야. 그보다 우린 살았어. 그 엄청난 폭발에서 살아남았다고!”
존은 흠뻑 젖은 햄스터 꼴을 해가지고 엄청나게 흥분해 있었다. 모리아티에게 납치되어서 폭탄 조끼를 걸치고 셜록을 기다려야 했던 존이다. 짧은 순간동안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것도 모자라서 눈앞에서 폭탄이 폭발했는데도 무사히 살아남았으니 흥분한 것도 당연하다. 최근에야 인정하게 되었지만 폭력과 스릴을 좋아하는 그로서는 끓어오르는 고양감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존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작은 손으로 셜록의 팔다리가 무사한지 더듬어 살폈다. 아프고 쑤시는 몸에 존의 바지런한 손길이 느껴지자 셜록도 그제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래. 우린 살아있어.”
손을 뻗어서 존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웃음선이 그려진 동그란 얼굴. 언제나 꾸밈없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Brilliant!를 외치던 그의 얼굴엔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있었다. 젖은 이마 위에서 붉은 피를 배어나오는 찢어진 상처로 손을 올리자 존은 아팠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픈 건 좋은 거다.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존의 몸에서 묵직한 폭탄 조끼를 벗겨내서 멀리 던져버렸을 때, 셜록의 손가락은 감각이 없었다. 괴한에게 납치되었을 때나 목을 졸렸을 때조차 감각을 잃지 않았던 손끝은 차디차게 얼어붙어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당연히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존재. 추운 날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온몸을 감싸 안아주는 따뜻한 공기 같은 존재를 덧없이 잃어버릴 뻔했다는 공포감이 셜록의 손끝을 모질게 깨물었었다.
내가 널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폭탄 조끼를 제때 벗겨내지 못했다면,
붉은 레이저가 겨냥한 너의 가슴에 무자비한 총탄이 날아와 박혔다면,
내가 이 폐허에서 눈을 떴을 때 무참하게 찢겨나간 너의 시체가 곁을 나뒹굴고 있었다면….
셜록은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한 손가락을 존의 얼굴에 갖다 댔다. 그리고 젖은 존의 얼굴에서 희미한 생명의 온기를 찾으려 더듬거렸다. 좀 더 만져보고 확인하고 싶어서, 좀 더 따스함을 느껴보고 싶어서 몸을 들이대고 어깨를 붙였다. 존은 셜록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조용히 몸을 기대주는 존의 얼굴을 감싸쥐고서 셜록은 자신의 뺨을 존의 뺨에 비볐다. 물과 피로 젖은 말랑한 피부. 뺨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이 안타까워서 셜록은 자신도 모르게 존의 입술에 입술을 갖다 댔다. 젖은 입술은 젖은 뺨보다 따뜻했다.
그것은 키스라고도 말할 수 없는 미약한 접촉이었다. 온기를 찾아서 얼굴을 부비던 입술과 입술끼리의 짧은 마주침. 맞닿은 입술은 입술 위에 보드라운 감촉을 남기고 떨어졌다. 셜록은 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존도 셜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 놀라움은 담겨있지 않았다. 셜록의 투명한 물빛 눈동자를 쳐다보던 존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존이 자신의 입술을 바라보는 걸 보고 셜록은 이번에는 그가 자신에게 입 맞추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살짝 벌어진 존의 입술이 다가와 셜록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입술 안쪽에서 따뜻한 숨결과 촉촉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그 느낌이 너무나도 반가워서 셜록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벌렸다. 서툰 움직임으로 서로의 온기를 찾던 두 개의 혀끝이 입안에서 바삐 뒤엉켰다. 셜록은 존의 입술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 존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존도 셜록의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밀어붙였다. 입술과 혀, 그리고 손끝에서 번져나가는 열기가 눈물이 날만큼 좋았다.
그가 살아있고 자신이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이나 소중할 줄이야.
숨이 막혀서 입술을 뗀 존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셜록, 자네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러나 셜록은 웃지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살아줘서 고맙네, 존.”
그 말에 존은 다시 웃었다.
흐뭇하게 치켜 올라간 입술에 셜록은 세 번째 키스를 했다.
존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셜록의 손가락은 존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라스트 에너미스몰 아일랜드 의 키스씬을 보고 키스씬이 쓰고 싶어서 시작한 글인데 키스는 얼마 없고....;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존은 베이커가 221B의 낯선 침대인데도 불구하고 꿀 같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따뜻한 잠의 샘에 두 발을 담그고 허리까지 넣고 목 끝까지 차오른 물속에 막 머리를 담그려는 찰나, 띠링! 하는 전자음이 존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았다. 서서히 가라앉던 몸이 멈칫하고 흐려지던 정신이 스윽 맑아졌다. 안 돼. 난 자고 싶다고. 그러나 무정하게도 다시 띠링! 하고 존의 의식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는 소리가 울렸다. 달콤한 잠속에 뛰어들기 직전이었던 존은 잔뜩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옆에 둔 핸드폰에서 푸른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셜록이었다.
‘자요?’
메시지 수신 시각은 2:45am.
이 몰상식한 동거인을 어쩌면 좋을까.
존은 두 번째 메시지를 확인했다.
‘거실로 내려와요. 안 잔다면.’
아니, 나는 잘 거야. 이렇게 편히 잠든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고.
존은 핸드폰 액정을 바닥으로 뒤집어놓고 다시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때 악마 같은 세 번째 전자음이 띠링! 하고 울렸다.
‘안자는 거 알아요. 내려와요.’
한참 액정을 노려보던 존은 가벼운 욕설을 중얼거리며 덮고 있던 시트를 열어젖혔다.
거실로 내려 가보니 셜록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하늘색 가운에 가벼운 실내복 차림의 셜록은 검은 코트차림보다 더 어려보이고 가늘어보였다. 아직 반쯤 감겨있는 눈을 슥슥 비빈 존은 어정어정 걸어가서 셜록의 앞에 섰다. 잠이 매달려있는 존의 얼굴을 보고 셜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깨웠어요?”
“알면서 왜 물어.”
“아직 짐도 제대로 안 옮긴 낯선 집에서 잘도 자는군요.”
“말했잖아.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군에 있다 보면 아무데서나 잘 자게 돼.”
모처럼의 단잠을 방해받은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듯 존의 말투는 낮보다 무뚝뚝했다. 그러나 셜록은 사과대신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부럽군요.”
존은 거의 선명해진 눈을 깜빡이며 셜록을 내려다보았다. 추리할 땐 방해된다고 밥도 제대로 안 먹는 셜록이다. 오늘 택시 운전수 사건을 해결하고 존과 함께 중국음식을 먹긴 했지만 꼬챙이처럼 꼬치꼬치 마른 손목과 목덜미를 보면 그가 평소에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는 건 천재 탐정이 아니라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불규칙한 식사에 따라붙는 단짝은 불규칙적인 수면. 역시 그건가? 존은 조금 풀어진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혹시 불면증이야?”
하지만 셜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불면증은 잠을 자고 싶어도 자지 못하는 병이니까 나에겐 해당되지 않아요. 내 증세는 잠을 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수면장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정신이 맑고 얼마든지 더 사고할 수 있는데 잠을 자는 건 시간낭비죠.”
“아무튼 잠을 못 잔다는 거네.”
못 자는 게 아니라 안 자는 거라고 정정하려던 셜록은 물끄러미 바라보는 존의 눈빛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드레날린 때문이에요. 사건을 해결한 날은 넘치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좀처럼 수면을 취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오늘은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기도 했지. 정신적인 충격도 무시하지 못할 거야.”
“왜 다들 내가 충격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쓸데없이 어깨에 담요나 덮어주고 괜찮냐고 묻기도 하고. 내가 괜찮다는 건 보면 모르겠어요?”
하지만 넌 지금 혼자 잠들지 못하고 자는 나를 깨우면서까지 곁에 불렀잖아.
그 말을 가까스로 도로 삼킨 존은 셜록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스프링 소리가 끼익하고 났지만 앉는 감촉은 제법 안락했다. 존이 옆에 와 앉자 셜록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존을 바라보았다.
놀라긴. 자던 사람을 일부러 깨워서 불러들였으면서 이 정도도 기대하지 않았던 거야?
존은 소파 팔걸이에 걸려있던 무릎 담요를 펼쳐서 셜록과 자신의 무릎에 덮고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댔다. 셜록은 여전히 꼿꼿이 등을 세운 채 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은 세 봤어?”
존의 뻔하디뻔한 질문에 셜록은 대번에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그래야하죠? 그리고 단순한 유아수준의 반복계산으로는 내 두뇌활동을 둔화시킬 수 없어요.”
“따뜻한 우유나 핫초콜릿은?”
“우유는 다 떨어졌고 단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건 왜 묻는 거죠? 나는 자고 싶지 않다니까요.”
미간에 살짝 짜증을 새기며 되묻는 셜록을 바라보며 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봐, 잠이 안 온다고 날 부른 건 너라고.
네가 뭣 때문에 자던 날 깨웠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존은 옆에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셜록에게 어린아이 타이르듯이 말했다.
“내가 자고 싶어서 그래. 네가 자야 나도 방해받지 않고 푹 잘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평소에 예민해진 신경을 가라앉히는 방법 같은 건 없어?”
“코카…….”
“약물 말고!”
존이 그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뻗어서 셜록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리자 셜록이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뒤로 뺐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잘난 척만 하던 그가 이렇게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은 처음 보았다. 그 표정에 왠지 장난기가 일어난 존은 셜록의 작은 머리통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서 마구 비비고 헝클어뜨렸다. Don't하고 짧은 소리를 지른 셜록은 도리질을 하며 뒤로 도망갔지만 남자 둘만 앉아도 빠듯한 작은 소파에서 더 도망칠 곳은 없었다. 의자 팔걸이에 등이 부딪쳐서 멈칫한 셜록을 존이 소파 쿠션 위에 쓰러뜨리고 버둥거리는 몸 위로 체중을 실었다. 셜록의 복슬복슬한 검은 머리칼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서 마음껏 뒤섞고 헝클어뜨리자 몸부림치던 셜록의 몸이 갑자기 축 늘어져버렸다.
“셜록?”
불현듯 걱정이 된 존이 손을 떼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까치집처럼 마구 흐트러진 검은 덤불 밑에서 잔뜩 토라진 얼굴이 존을 흘겨보고 있었다.
“다 끝났어요? 그렇다면 어서 비켜요. 무겁다고요.”
정색을 하면서 삐진 셜록의 얼굴을 본 존은 그가 이런 종류의 스킨십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형도 있으면서 이런 장난을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걸까? 하긴 오늘 만난 그의 형님이 이렇게 강아지들이 서로 물고 까부는 것 같은 장난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군대에서 지내면서 남자들끼리의 과격한 투닥거림에 익숙했던 존은 그렇지 않은 셜록에게 이런 장난을 친 것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존은 사과의 의미로 엉망이 된 셜록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미안. 네가 같은 캠프의 동료가 아니란 걸 잊고 있었어.”
“현실 적응 좀 하시죠. 여긴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런던. 난 같은 캠프의 병사가 아니라 당신의 플랫메이트라고요.”
셜록은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리면서 쏘아붙였지만 헝클어진 머리칼을 풀어주는 존의 손길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엉킨 머리칼 사이에 작지만 단단한 손가락을 넣고 한 올 한 올 풀어주는 존의 손길이 불쾌한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마에 내려온 머리칼을 쓸어 올려줬을 때 셜록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을 보고 존은 그가 난폭한 장난은 싫어해도 부드러운 터치는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아이고, 이 오냐오냐 자란 도련님 같으니라고.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특별히 서비스 해주지.
존은 셜록의 몸에 완전히 체중을 싣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셜록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던 손을 목덜미로 미끄러뜨렸다. 아니나 다를까 셜록의 목덜미 근육은 단단히 굳어있었다. 어깨 재활 훈련을 할 때 배운 마사지식으로 승모근을 꽉 움켜쥐자 아팠는지 셜록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근육의 결대로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주물러주자 찡그린 미간이 펴지고 경직된 입가가 이완되었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기분 좋아, 셜록?”
“…별로.”
얼굴에 기분 좋다고 다 써있는데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셜록이 얄미워졌다. 존은 목덜미 근육에서 가장 효과적인 압점을 집고 꽉 눌렀다. 그러자 셜록이 눈을 꼭 감아버리면서 ‘아….’ 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가 마치 고양이가 고롱거리는 소리 같아서 존은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미안, 아팠어?”
“………별로.”
“그럼 계속해?”
“…당신이 계속 하고 싶다면.”
존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셜록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편히 늘어뜨렸다. 긴 다리가 소파에 다 들어가지 않아서 한쪽은 밖으로 삐져나갔지만 딱히 불편해 보이진 않았다. 존은 셜록의 표정 변화를 관찰하면서 슬슬 풀어지기 시작한 목덜미와 두피, 어깨를 조물조물 주무르고 마사지해주었다. 셜록의 피부는 존보다 얇고 서늘해서 손끝에 와 닿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얼마나 계속했을까. 이마에 땀이 배고 힘주어 꾹꾹 누르던 손가락이 저려올 때쯤, 존은 셜록의 표정에서 변화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존의 손길에 따라 미간을 찌푸리기도, 기분 좋게 입 끝을 치켜 올리기도 했던 셜록의 얼굴에는 고요한 평온만이 떠올라 있었다. 존은 셜록의 목덜미에서 손을 떼고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셜록?”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조용히 가라앉은 숨소리뿐이었다.
“자는구나.”
존은 셜록이 깨지 않도록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있으니 신경질적으로 보이지도 차가워보이지도 않았다. 기분 좋게 잠든 탓인지 살짝 입을 벌리고 자는 그의 표정은 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루 종일 그 난리를 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잠이 안 온다고 자던 사람 불러내서 귀찮게 굴던 녀석이 이렇게 순진한 얼굴로 잠들다니 이건 반칙이야. 조금 심술이 난 존은 셜록의 높은 코끝을 두 손가락으로 집고 지그시 눌렀다. 그러나 코가 막힌 줄도 모르고 쿨쿨 자던 셜록은 호흡이 힘들어지자 잠결에 미간을 찡그리며 입으로 숨을 컥 들이켰다. 찔끔 놀란 존이 손을 떼고 셜록의 안색을 살폈지만 셜록은 다시 편안한 숨소리를 내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수면장애라고? 잘만 자잖아….”
존은 어이없는 눈으로 셜록을 내려다보았다. 사건을 해결한 날은 잠을 못 잔다던 그의 말은 자신을 놀리기 위한 허풍이었을까? 아니면 그도 이제야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네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다섯 번째로 셜록의 목숨을 위협하던 택시 운전수를 주저 없이 쏘아 맞췄을 때, 손아귀에서 짜릿하게 퍼지던 반가움과 해방감처럼. 홀로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잠 못 이루며 뒤척이거나 겨우 잠들어서도 악몽을 꾸다 식은땀에 흠씬 젖어서 벌떡 일어나던 자신을 아기 양처럼 잠들게 해준 무언가를.
…그것이 목 마사지는 아닌 것 같지만.
존은 조용히 뒤로 물러나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프링이 삐걱거렸지만 셜록은 좀처럼 깨지 않았다. 투닥거리느라 바닥에 떨어진 무릎담요를 집어든 존은 셜록의 몸에 잘 덮어 주었다.
“Sweet dream, Sherlock.”
담요 위로 셜록의 어깨를 다독여준 존은 발소리를 죽여서 조심스럽게 거실을 나왔다. 셜록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었더니 다시 잠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대로 잠들면 꿈도 꾸지 않고 달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존은 하품을 하면서 침실로 올라갔다. 썰렁해진 시트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눈을 감자마자 따뜻한 잠의 샘이 다시 존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존은 아래층 소파에서 곤히 자고 있는 정신 나간 천재처럼 곧 깊이 잠들었다.
그때 셜록을 잠들게 한 것이 무엇인지 존이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