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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학교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광경에 왜 그렇게 울컥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무척 배가 고팠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엄마가 자주 만들어 주었던 미트로프에서 완두콩을 골라내다가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났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겁에 질린 꼬맹이 고든이 울상을 지으며 도망치려한 순간, 나는 그의 다리를 붙잡고 번쩍 들어 올려서 스파게티 접시 위로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먹어! 고든!”
내 외침소리가 카페테리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아까부터 이 테이블에 주목하고 있던 녀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었다. 거꾸로 들어 올린 고든의 얼굴을 몇 번 더 토마토소스에 박아주며 먹으라고 소리쳤더니 애들이 깔깔 웃으며 내 말을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 콜이 계속되면서 구경꾼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카페테리아 안의 모든 학생들이 날 주목하고 응원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꽤 좋았다. 화가 났던 것도 잊고 신이 나버린 나는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버둥거리는 고든의 다리를 고쳐 안고서 위 아래로 흔들며 외쳤다.
“야채도 먹어야지, 고든!”
내 말에 구경꾼들 사이에서 왁자하고 웃음이 터졌다. 깔깔대며 ‘먹어라!’를 연호하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피터 파커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나는 피터에게 고갯짓을 하며 외쳤다.
“야, 파커! 이거 사진 좀 찍어봐!”
아까부터 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는 놈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피터에게 찍으라고 시켰다. 피터가 매일 애지중지 목에 걸고 다니는 고물 카메라로 내 사진을 찍어서 게시판에 붙여두면 재밌을 것 같았다. 피터 녀석은 자기가 찍은 사진을 아무도 안 보는 게시판에 붙여두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피터는 사진을 찍지도, 다른 구경꾼들처럼 먹어라 콜을 외치지도 않았다.
“걔 내려놓지 그래.”
그는 나를 둘러싼 많은 구경꾼들 중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꺼냈다.
“사진이나 찍어, 파커.” “내려놔, 플래시.” “사진. 찍어!”
나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아무리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놈이라도 내 표정을 보면 지금이 오지랖 떨 때가 아니라 얌전히 짜져있을 때라는 걸 알 텐데. 그러나 멍청한 파커 자식은 눈치란 게 아예 없는지 카페테리아에 있는 애들에게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내려놔, ‘유진’!”
순간, 주위에 가득하던 웃음과 환호성이 단숨에 사그라졌다. 대신 웃음은 피식거리는 비웃음이 되고 환호성은 야유로 바뀌었다. 나는 눈썹을 치켜뜨고서 피터를 험악하게 노려보았다. 비록 그 이름이 본명이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쭉 플래시로 통했다. 내 앞에서 그 이름을 부른 녀석들에게 두 번 다시 입에 담아선 안 된다는 교훈을 몸소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날 그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 사람은 우리 엄마뿐이다. 그것도 화가 무지 많이 나셨을 때만. 그런데 피터 파커, 네가 감히 이 많은 구경꾼들 앞에서 날 웃음거리로 만들어? 그것도 꼬맹이 고든을 위해서? 넌 이 자식이랑 별로 친하지도 않잖아!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 치솟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들고 있던 고든을 홱 내던져버리고서 성큼성큼 피터에게 걸어갔다.
“이봐….”
피터가 내게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내 주먹은 그의 턱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여린 살과 뼈를 치는 생생한 느낌이 주먹으로 전해져 왔다. 고든의 몸과 비슷할 정도로 가벼운 피터의 몸은 펀치 한 방에 벌렁 뒤로 넘어갔다.
“일어나, 파커!”
내 외침에 피터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가 몸을 바로 세우기도 전에 복부에 묵직한 보디블로를 먹였다. 제대로 들어갔는지 피터는 촌스러운 팬티를 내보이며 바닥을 꼴사납게 나뒹굴었다. 재밌는 구경거리에 초를 친 피터에게 향했던 구경꾼들의 야유가 조금씩 내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었지만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은, 아니 어제부터 일진이 안 좋았다. 일진이 안 좋은 날은 내 신경을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파커. 네가 얌전히 사진을 찍었으면 나도 이렇게까지는 안했을 거라고.
“일어나! 덤비라고!”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려고 바닥을 짚고 엎드리는 피터의 배를 세게 걷어찼다. 그가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지자 야유가 거세지고 내 심장소리도 거세졌다. 눈앞이 붉게 물들고 몸속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피터는 이번엔 일어나지 못 하고 바닥에 뻗어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가 배를 움켜쥔 채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도……난 안 찍을…거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띄엄띄엄 내뱉는 그의 말에 목구멍 안쪽이 확 뜨거워졌다. 엄청나게 화가 났거나, 울고 싶을 때처럼.
“까불지 마! 파커!”
약골 주제에 까불지 말고 그대로 누워있어.
“한 방 더 갈까? 어때?!”
일어나면 널 다시 때릴 거야. 여기 있는 애들 앞에서 네가 다시는 날 무시하지 못하도록. 야유하는 놈들을 돌아보며 내게 도전하면 너희들도 이렇게 될 거라고 두 팔을 치켜들었을 때였다.
“플래시!”
낯익은 목소리가 등을 두드렸다. 돌아보니 그웬이었다.
“플래시, 우리 오늘 학교 끝나고 만나기로 한 거 맞지? 우리 집에서 3시 반에. 네가 숙제를 다 해놨기를 바라. 지난번엔 상당히 실망스러웠거든.”
그웬 스테이시. 이 학교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유일한 여자애.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그웬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사납게 곤두선 신경이 스르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열기가 식고 붉게 물들었던 시야가 본래의 색깔로 돌아왔다. 그러자 불과 1분 사이에 내가 만들어낸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로 지저분하게 흩어진 음식물과 종이식기, 상체만 가까스로 일으켜 앉은 피터의 터진 입가, 제대로 시선을 맞추지도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그의 갈색 눈과 그 안에 담긴 본능적인 공포, 굴욕감. 그 모든 것들이 내겐 진저리가 날 만큼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플래시, 우리 이만 교실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그웬이 말했다. 싫다고 해도 그웬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마침 수업시작 벨이 울려서 구경꾼들도 각자의 교실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피터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더 이상 여기 있어봤자 내가 할 일은 없어 보였다.
“…맘대로 해.”
나는 시무룩하게 대꾸하고서 피터와 그웬에게서 등을 돌렸다. 싸움에 이겼는데도 뒷맛이 지독하게 씁쓸했다.